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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스트의 맨얼굴

코알라 아빠 2019. 7. 19. 10:14



Introduction – 개요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되기 전에,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고향 땅이 될 것이라는 시오니스트의 거짓 선전을 믿었다. 이 유대인들은 종교적 박해를 받던 유대인, 민주적인 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 성경적 예언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다. 



나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25살까지는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은 유대인들에게 완전한 자유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유대인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미국땅에서 성공하였고, 유대인 중의 일부 그룹(시오니스트)는 미국땅에서 정치, 경제적 지배권을 자치하는 지위까지 올라갔다. 



내가 지금부터 당신에게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시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시오니스트들은 거짓선전을 활용하여 시오니즘과 유대이즘이 동일한 것이며, 유대인 종교의 본질적인 면이라고 미국 사람들이 믿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 이다. 



유대교는 종교이다; 시오니즘은 공산주의와/사회주의 뒤에서 수백 년 동안 숨어서 활동한 동유럽 유대인(아슈게나지)의 정치적인 활동이다. 시오니스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들이(유대계 은행 포함) 단일 정부를 만들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I was a Victim of Zionist Propaganda – 나는 시오니스트 거짓 선전의 희생자 였다.



1967년 중동 전쟁 이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향 땅(이스라엘)이 힘있고 성공하였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미국땅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거짓 선전에 놀아났다. 그래서 1967년부터 1970년 까지 대략 50,000명의 미국계 유대인들의 시오니스트의 거짓 선전에 속아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나도 이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시오니스트의 선전에 푹 빠진 나는, 미국보다 새로운 유대인의 국가인 이스라엘이 내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스라엘에서의 삶은 도전이며, 다른 유대인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하는 또 다른 가짜 선전도 있었다. 





Dual Citizenship- 이중 국적



내가 미국을 떠나 이스라엘로 가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왜냐면, 비록 내가 이스라엘로 이민을 간다고 하여도 나는 미국 시민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며,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과 몇몇 다른 국가의 이중국적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는데 미국이 그 중 한 나라이다. 미국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독일계 미국인은 독일과 미국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도 미국과 이탈리아의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이집트계 미국인도 이집트와 미국의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
일본계 미국인도 일본과 미국의 국적을 함께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미국계 유대인은 이스라엘 시민과 미국 시민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힘이 미국정부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실제로 미국정부는 화폐발행권도 없다. 미국의 달러는 frb라는 민간회사에 발행권이 있으며
이 FRB의 대주주들은 미국과 유럽의 핵심 유대가문 소유의 회사들이다.)





I Arrive in the "Jewish Paradise" – “유대인의 천국”에 도착하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 내 유대인 친구는 내가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여동생 Fawzia Daboul과 그녀의 노처녀 숙모와 잠시 지낼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델아비브 밖의 Lod 공항에 도착한 후, 나는 Daboul과 그녀의 숙모가 사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나는 Fawzia를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그녀를 그녀의 히브리 이름은 Ziva라고 불렀다. 그녀는 나처럼 시오니스트의 선전에 속아 이집트에서 건너온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 이었으며, 미용사로 일하고 있었다. 





The Kibbutz – 키부츠



Ziva와 그녀의 숙모와 같이 2일을 지낸 후, 나는 6개월을 Kibbutz에 있는 ‘Ein Hashofet’에 있는 공동체에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떠났다. 이 공동체는 이스라엘에서 운영하는 150여개 공동체중 하나였으며, 더 많은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특별히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쫓아낸 지역에 공동체가 많이 생겼다. Kibbutz는 농업 및 번쳐 기업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중요한 것은 Kibbutz의 시스템이 폴란드,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이주한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만든 일종의 매트릭스란 것이다. 이들 폴란드/러시아로부터 이주한 유대인들은 볼세비키로 알려진 유대인의 한 분파이다. 
볼세비키는 1917년 벌어진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 국가의 시작의 근원을 일으킨 세력이다. 
(이 볼세비키 세력의 핵심은 대부분 유대인들 이었으며 레닌,트로츠키,스탈린등 핵심지도자역시
대부분 이름과 성을 러시아식으로 바꾼 유대인들이었다. 또한 러시아를 그들이 개발한 
공산주의로 완전히 공산화시킨 1935년에 최고위층 핵심 공산당 중앙위원 59명중에 56명이
유대이이었고,,나머지 3명도 와이프가 유대인들 이었다. 심지어 핵심 비밀정보기관인 
NKVD의 최고위층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으며 이 유대소련 공산당은 2천만명이 넘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고려인,타타르인등 소수 민족들을 굴락이라는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거나
굶어죽이거나 인종청소로 죽였다.)





Now, Back to the Kibbutz - Kibbutz로 돌아가다



1967년 전에 kibbutz에서 노동일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하였다. 그러나 1967년 전쟁 이후, 이 노동일은 저임금의 아랍인들과 해외에서 온 자원자 들이 하였다. Kibbutz의 모든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들은 옷과 음식 그리고 적은 양은 돈을 받았다. 벤쳐기업에서 발생한 모든 이익은 미래를 위하여 Kibbutz 공동체 계좌에 입금되었다. 이 모든 Kibbutz들은 사회주의 및 극렬 공산주의로 구성된 이스라엘 막시스트 당과 연관되어 있다. 



Kibbutz에서 생활할 때, 나는 극렬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계획된 6개월에서 2개월 일찍이 4개월 만에 kibbutz를 떠다는 것이 행복하였다. Kibbutz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Ziva와 교제를 하였다. 내가 Kibbutz를 4개월 만에 떠난 이유중의 하나가 Ziva 였다. – 우리는 결혼 하였다. 





Our Marriage Created Problems – 결혼이 문제를 야기하다.



결혼식은 세파라딕(Sephardic) 예배당에서 하였는데 간결하지만 아름다웠다. Ziva와 나는 결혼에 행복하였지만, 우리의 결혼은 문제를 야기 하였다. Ziva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이고, 나는 아슈게나지 유대인이다. 아슈게나지 유대인이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간의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막강한 시오니스트의 선전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유대인은 “신의 선택”을 받은 단일 민족이라고 믿게 하였다.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거짓말은 나중에 설명을 할 것이고, 지금은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명확히 구별되는 두 개의 그룹이 있으며, 이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로 왔다. 

세파라딕(Sephardic)유대인들은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왔으며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은 동유럽에서 왔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은 아주 역사가 깊은 유대인들이며, 성경에 언급된 유대인들이며 성경에 언급된 지역에서 이제껏 살아왔다, 이들은 혈통적으로 아랍인들과 아주 비슷하다. 아랍인들과 단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이들이 믿는 종교일 뿐이다. 



현재 전 세계 유대인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이상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많은 역사가들 역시 유대인),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1200년 전에 생겼다, 그 발생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유럽의 동부 끝 자락에, 카자르(Khazars) 로 알려진 부족이 살았다. 기원후 740년에 이 카자르의 왕은 그들의 종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대표자가 초대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카자르왕국은 유대교를 선택하였는데,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만약 카자르가 기독교를 선택하였다면 이들은 강력한 이슬람 국가의 분노를 초래했을 것이고, 이슬람교를 선택하였다면, 이 역시 강력한 기독교 국가들의 분노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중간 형태인 유대교를 선택하였다,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이다. 



13세기 어느때쯤 이들 카자르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땅으로부터 쫒겨나서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들 상당수가 가주한 지역이 폴란드와 러시아이다. 이들 카자르인들이 현재 알려진 아슈게나지 유대인이다. 이들은 실제 유대인들이 아니며, 유대 혈통도 아닌데, 단순히 유대교를 믿는다고 유대인으로 불려진다



번역자 주) 아수게나지 유대인의 기원인 카자르인인지 아닌지에 관하여는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논란이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발전된 유전공학에 의하여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기원이 카자르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도 합니다. 이 글에서도 저자가 말하기를 “역사가에 의하면” 입니다. 아직 확증 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역사를 통하여 폴란드와 러시아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공산주의/사회주의를 경험하였으며, 이들 국가에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1800년대에 주목할 만한 숫자의 공산주의/사회주의 유대인들이 독일에 있었으며 결국 발칸 반도 및 전 유럽으로 확대 되었다. 이들이 러시아 정부 및 사회 업무에 계속적으로 개입을 하였고
노동자와 농민이 배후에서 폭동을 조장하거나 러시아 황제의 가족을 암살하기도 하였다.

결국 참다못한 러시아 황제 짜르는 유대인들은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어떤 사람들은 중, 남미로, 그리고 상당수의 인원이 미국으로 넘어 왔다. 





Political Zionism is Born – 정치적인 시오니즘의 탄생



1897년 첫 번째 시오니스트 의회가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되었다. 이 의회에서는 유대인 국가 건설이 결정되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장소를 찾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아프리카를 제공하였으나, 시오니스트들은 이것을 거절하였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원하였다. 
(당시 팔레스타인은 자갈밭에 사막뿐이었는데 이런 불모지 사막땅에 국가를 건설해달라고 한것은
역사보다는 중동의 석유와 관련이 깊었다. 영국,프랑스,미국의 시오니스트 유대인 핵심들은
동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다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에 집어넣고 중동의 석유를 감시하는
감시견용및 전방 전투기지 병사들로 써먹을 요량이었다. 즉 이즈라엘 국가자체는
원래 중동 석유감시및 관리용 병영초소였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



이 때 팔레스타인 땅에는 50만명 정도의 아랍인들과 이들과 혈연으로 연결된 소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수백 년 동안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을 자신들의 땅으로 결정하고, 유럽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설명하였듯이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자들이며 이들 중 일부는
세계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극단적인 볼세키비(공산주의자들)였다. 



유대인에 관하여 생각을 할 때는, 특별히 이스라엘과 관련된 유대인을 생각할 때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아슈게나지 유대인간에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주의하여야 한다. 이들은 단일 민족이 아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특별히 혈통적으로 구분된다. 이제 다시 Ziva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ziva와 함께 소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결혼 초기 삼 년 동안, 나는 Ziva의 숙모와 같이 지내야 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서 집에 부족하기도 하였으며, 인종차별주의 때문이다. 집을 할당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l 아슈게나지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오래된 사람에게 최우선 배정한다

l 두 번째는 유럽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 특별히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결혼한 경우

l 그 다음 순위는 미국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 특별히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출생한 아슈게나지 유대인과 결혼한 경우

l 집이 남아 있는 경우, 그 다음 순위로 세파라딕(Sephardic)에게 할당됨

l 마지막 순위는 무실림, Druze와 기독교



직업의 기회도 이와 비슷하게 주어졌다: 아슈게나인 유대인에게 좋은 직장이 주어졌고, 그 다음이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 그리고 무실림, Druxe와 기독교인들은 천한 직업이 주었으며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였다. 나는 비록 미국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 이었지만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였다는 이유로 집의 배정에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 



번역자 주 ) Druxe -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분파



주택을 얻지 못한 것은 내가 이스라엘에서 두 번째로 경험한 인종차별주의다. 

내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때부터, 나는 많은 욕설을 들었다. 미국계 유대인들은 이 욕설을 피하지 못하였디.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하여, 미국의 기부 및 원조에 많은 것을 의지하여야 하였으며, 아무런 값어치 없는 이스라엘의 채권을 미국이 사주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엘리트 아슈게나지 유대인의 질투를 불러 일으켰으며, 비록 같은 아슈게나지 유대인 이었지만 미국에서온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이 질투를 피할수 없었다. 



나는 여러 번 “니네 나라로 돌아가. 우린 너의 돈이 필요할 뿐이지,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란 말을 들었다. 



그런데, 미국계 유대인의 한 부류는 환영 받았으며 특별대우를 받았는데, 이들은 정식 유대인 공산당원들이었다. 



나처럼 1967부터 1970년 까지 이스라엘로 이민간 미국계 유대인 50,000명중의 20%(10000명)정도가 막시스트였으며 이들 상당수는 정식 유대인 공산당원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 및 지역 아슈게나지에게 환영 받았으며 특권을 부여 받았다- 주택, 직업 그리소 사회적 지위. 이것 말고도 상당한 수의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이 칠레, 아르헨티나 그리고 남 아프리카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결국 이때 이스라엘로 이민간 50000명중 80%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남아 있는 20%는 정식 공산당원 또는 막시즘을 흠모하는 사람들이다. 





Three Faces of Israel – 이스라엘의 3가지 얼굴



내가 이제까지 말한 것을 정리하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스라엘이 막시스트(공산주의/사회주의)국가라는 생각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것이 정확한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3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 러시아로부터 이스라엘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그들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을 많이 실행하였다. 독일에서 건너온 아슈게나지 유대인은 공산주의에 대한 음모를 하며 이들을 지원하며, 나찌 스타일의 파시즘을 시행하고자 한다. 

세계 2차 대전 중, 독일에 거주하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나찌 게슈타포와 긴밀히 협력하여 
사회 하층부에 있는 독일계 유대인을 탄압하고 이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이들 엘리트 사오니스트 유대인들은(나찌즘에 친숙하고 이것을 선호하는 유대인들)은 파시즘의 여러가지 측면을 이스라엘에 심어 놓았다. 이스라엘이 민주주의라는 인상을 주기 위하여 고전적인 선거를 통하여 이스라엘 의회를 구성하는데, 이것이 이스라엘이 민주주의 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리쿠르트당이 정권을 잡던, 노동당이 정권을 잡던, 엘리트 시오니스트들이 독재정치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들은 엘리트 집단을 따르며, 이들에 반대하는 어떠한 세력도 잔인하게 억압한다. 



시오니스트/공산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계획에서, 이스라엘의 임무는 중동에서 끈임 없는 분란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 계획의 실현에서 전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전쟁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게도 보인다. 이스라엘은 히틀러의 유겐트(청년대)와 동일한 청년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명칭은 Gadna이다. 모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Gadna에 참여하여야 한다- 남녀 모두. 히틀러의 청년대와 마찬가지로 이들 Gadna도 군복 유니폼을 입는다. 이들은 준 군사 훈련을 받는다. 



심지어, 이들이 하는 놀이에서도 총과 전쟁과 연관된 것들을 발견된다. 이들이 소풍을 가면, 야구나 축구 이런거 대신, 반 자동 소총이나, 저격용 총으로 사력훈련을 하며, 전쟁 놀이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청년들은 3년 동안 (여자는 2년) 육군에 복무하거나, 4년(여자는 3년) 동안 공군 또는 해군에 근무하여야 한다. 초 정통파(Ultraorthodox)의 종교적 유대인은 이 군 복무를 면제 받는다.(주 - 유대 정통종교의 사제가 되고자 하면 군 면제가 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 군복무를 마친, 상당수의 사람들이 Shin Bet(이스라엘 국내 안전부)에 들어간다. 이 조직은 히틀러의 게슈타포 조직과 같은 것으로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시오니스트의 막시즘/파시즘 정권에 대한 반대를 하는 누구라도 제압하는 것이 이들이 임무이다. 


마치 나찌 독일에서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히브리 말로 “Teudat Zehut”라고 하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하고 다녀야 한다. 



어떤 날, 내가 재킷을 갈아입은 후, Teudat Zehut를 잊어버리고 델아비브의 중심가에 간 적이 있었다. 경찰관이 다가와 “Teudat Zehut”를 보여줄것을 요구하였고 나는 재킷을 갈아입은 후 깜빡 하고 챙기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다. 결국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경찰서에서 내근중인 한 경사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재판 없이 또는 재판 전까지 16일 동안 구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경찰이 “구류 명령서”에 사인만 하면 나는 16일 동안 구금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부인에게 나의 신분증을 가져오도록 전화를 사용을 요청하였고 경사는 2시간의 시간을 주었다. 나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부인인 이 2시간을 몇 분 남겨두고 경찰서에 도착하였다. 만약 나의 부인이 늦었다면, 나는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16일 동안 구류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민주국가가 아닌 경찰국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나찌즘/파시즘과 관련하여, 정리를 한번 해보자. 독일 사람들은 존경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나는 독일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일반 대중들은 교활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권력을 손에 쥔 나찌의 희생자였다. 독일에서 일반적인 유대인들은 나찌와 같이 협력하였던 시오니스트 엘리트들의 희생자들 이었다. 독일 나찌와 협력 하였던 많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건너와 이제 폴란드/러시아에서온 시오니스트/공산주의 유대인들과 같이 손잡고 일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공산주의/나찌 스타일의 파시즘의 두 가지 얼굴이다. 민주주의는 그냥 헛것일 뿐이다. 
(실제 히틀러역시 오스트리아에 거점을 둔 로스차일드가문의 아들과 식모의 사생아가 아버지이며
히틀러의 핵심 참모였던 히믈러역시 유대인이었다. 또 히틀러와 나찌당의 배후에서 자금을 대주 
세력역시 부시가문등 유다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세력들이었다.)



엘리트 아슈게나지 유대인들과 나찌의 연결 고리에 관하여, ‘Ashkenazi’ 란 단어를 살펴보자. 



Ashke-Nazi 재미있지 않나요?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혼란이 있는데, 파시즘은 국가 사회주의이며, 공산주의는 국제 사회주의 이다. 





Israel's Economy – 이스라엘의 경제



경제학적으로, 이스라엘은 파산했다. 물론, 이스라엘의 경제 구조가 사회주의에 기반한 것이라 이것은 쉽게 예상 할 수 있다. 



국가의 정부와 시민들이 자신들이 생산하는 가지 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면, 그 결과는 경제의 파산이다. 만약 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의 경제는 예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이스라엘은 ‘복지국가’이다 – 미국으로부터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국가이다. 



미국의 농부, 중소기업인 그리고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하여 노력할 때, 시오니스트 유대인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미국의 정부는 미국 납세자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어 이스라엘 사회주의 경제와 전쟁 시스템을 지원한다. 



이스라엘 정부와 시오니스트들은, 미국에 대한 시오니스트의 압력이 미국이 계속 막대한 양의 돈을 이스라엘로 보내줄 것임을 알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몇몇 특권층들은 마치 술 취한 뱃사람처럼 돈을 마구 사용한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며 결국 경제 붕괴를 초래한다. 



이스라엘을 술 취한 뱃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뱃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최소한 뱃사람은 자신의 돈을 사용한다. 이스라엘은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그 생존을 위하여 미국의 지원에 의지하는 복지국가 이기 때문이고, 이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의 인플레이션은 130%였다. 



1983년에는 200%였고, 오래는 40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의미 하는 것은 1월 초에 1달러를 하던 햄버거 값이 12월 말에 5달로 오른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만큼 경제문제에 빠진 국가가 없었으며, 이런 문제를 당하고 경제붕괴를 피한 나라가 없다. 오로지 미국이 주는 원조를 늘리는 것만이 이 붕괴를 피하는 방법이다 – 그러나 이것 역시 임시 방편일 뿐이다. 



파괴적인 사회주의적 경향의 경제와 관련하여 말을 하면, 사람을 돕는 사회 복지망이 성공하기 위하여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그 사회내부에 충분한 자금이 있어야 하며, 시민들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에는 이런 것(돈, 도덕적인 시민, 남을 위한 배려)이 전혀 없다. 국가의 경제는 외부의 지원으로 위태하게 영위되며, 정부가 시민들에게 필요한 여러 것들을 공급하기에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잊어 버리고, 자기 만족에 빠져 버린 사람들의 국가는 쉽게 망한다. 





Visitors to Israel -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사람



관광산업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수입원중의 하나이다. 미국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가장 큰 집단이다. 그러나, 미국계 기독교인 역시 성스러운 장소 및 “신이 선택한 민족”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자 많이 이스라엘을 찾는다. (미국인 다음으로 이스라엘을 많이 방문하는 것은 한국인들일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한다고 이스라엘로 와서 많은 돈을 쓰고 가는 것이다. 왜 수많은 한국인들이 자기 조상들
신앙은 부정하고 이스라엘까지 와서 돈을 내놓고 가는지는 이해 불가한 현상이다.0



이들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있는 동안, 유대인들과 가축(Gentile, 비유대인 관광객)들은 세심하게 모니터링을 당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실수로 관광지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의 어두운 면 -이스라엘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소련과 다른 동구 공산주의 국가처럼, 관광객들은 미리 계획된 장소만을 방문하게 된다. 

종교적 유적지, 대학교, 잘 가꾸어진 과수원, 첨단 과학단지, 미술관 그리고 이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홀로 코스트 박물관을 보게 된다. 이러한 계획된 관광으로 인하여 관광객들은 게토(ghettos)를 보지 못한다. 이 게토는 대부분 아랍 정치범들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 정치범을 감금하는 교도소인데, 이곳에서는 반인간적인 고문이 자행된다. 관광객들은 이스라엘에 광범위하게 퍼진 범죄, 부패, 조직범죄 집단과 경찰과의 협착 등을 보지 못한다. 



관광객들은 이스라엘 막시스트/파시스트 정권이 벌이고 있는 작태를 보지 못하며, 인종차별도 보지 못한다. 



나는 이스라엘에 와서 종교적 흥분으로 자신을 주체 못하는 미국여성 관광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에게 성경책 한 권을 주어보세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종교적 자유를 얼마나 보장해주는지 아시게 됩니다. 만약 경찰이 당신이 성경책을 주는 것을 목격하면, 당신을 체포할 것입니다. “

홀로 코스트 박물관과 관련하여, 나는 다음의 내용을 분명히 언급 하고자 한다. 



1. 독일에 있는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이 나찌에 협력하지 않았다면 홀로코스트는 발생하지 않았다. 

2. (2차대전 발발전에)시오니스트들이 전 세계에 퍼져있던 유대인들을 설득하여 독일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있던 시오니스트들은 루즈벨트를 설득시켜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봉쇄하였다. 이 때는 전쟁 전이어서 유대인들이 목숨을 보존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을 장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오지 못하게 봉쇄한 것은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으로 토끼몰이하여
중동의 석유를 감시,관리하는 전투기지의 사병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비고 -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학살을 과대 선전 하였다. 실제 벌어진 유대인의 학살과 시오니스트들이 선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Religion – 종교



예전에는 팔레스타인 땅이었고, 현재 이스라엘이 수립된 이곳은, 모세(유대교), 예수(기독교) 그리고 마호메드가(이슬람교) 활동한 장소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은 각종 종교적 장소 및 이벤트로 가득하며, ‘성스러운 장소’로 언급된다. 누구라도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은(현재는 이스라엘), 이곳이 성스러운 분위기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팔레스타인 유대인이 이곳에서 살고 있을 때, 이곳은 종교적 오오라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니스트들이 이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을 세운 이후로, 이 땅은 세상에서 가장 죄악이 가득한 땅으로 바뀌었으며 유대교를 믿는 인구는 전체인구의 5% 밖에 안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강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아랍 무슬림과 아랍 기독교 인들이 이스라엘 인구구성에서 소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법은 모든 종교를 억압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을 다른 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이스라엘에서는 불법이다. 그 유대인이 무신로자이던, 그냥 휴머니스트이건 관계없다. 



기독교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건물 내부에서만 허용되며, 성직자나 그 박에 누구라도, 교회 밖에서 기독교의 교리를 전파하면 징역 5년에 처해진다. 



기독교인이 성경에 나와있는 구절이나 다른 종교적인 문구를 유대인에게 전하면 징역 5년에 처해진다. 심지어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어떠한 친절이나 호의를 베풀어도- 예를 들면 음식이나 선물을 주는 것- 이것은 종교적 개종을 권유하는 것으로 사료되어 징역 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억압은 이슬람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슬람인이 유대인에게 친절이나 회의를 베푸는 행위도 개종행위로 간주되어 징역 5년에 처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지배층인 시오니스트들에게 있어서 유대교를 처리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이던 비 유대인이던 이스라엘을 유대교의 본고장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유대교의 활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오니스트들은 전세계의 반감을 우려하여 유대교에 대하여는 함부로 억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오니스트들은 이스라엘 내 소수 유대인들의 종교활동에 대하여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God's Chosen People –신이 선택한 민족



미국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 이라고 믿게끔 세뇌 되었다. 이러한 신화는 소수 유대인 그룹이 만든 것dl다.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몇 가지 문구를 발췌하여 이것을 근거로 하여 하느님이 그들을 ‘선택된 민족’으로 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은 사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무신론자들이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울부짓는 사람들은 시오니스트/막시스트(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인데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대교를 선택한 것이며, 성경에 나오는 실제 유대인과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가 없다. 



이스라엘의 어떤 종교적인 유대인이 말하기를 “한때 우리는 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었으나, 오래 전에 그 권리를 박탈당했다”



누구라도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신이 한 때 유대인들을 편애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언약의 궤’로 구성되는데, 신의 편애의 조건은 ‘언약의 괘’에서만 성립된다. – 이 조건은 유대인들이 신의 말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유대인들은 언약을 저버렸다. 그들은 신을 거부하였고 마몬을 숭상하였다. 성서학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성경을 읽어보면 오래 전에 유대인들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권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3가지 종교를 비교하며, 나는 다음과 같은 관찰 사항을 언급한다. 

유대교 – 세파라딕(Sephardic)이던 아슈게나지이던간에 아주 소수의 유대인만이 믿는 종교이며, 미국,이스라엘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공히 마찬가지다



기독교 – 기독교는 유대교의 방해공작(참견과 간섭)에 의하여(특히 미국), 다양한 교파들의 혼동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정교에 대하여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도록 만들었다. 유대인 또는 유대인으로 구성된 단체의 지도자들이 무수한 기독교 분파와 그들의 교리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이슬람 – 이슬람의 교리를 따르는 무슬림은, 이들 3가지 종교인들 중에 가장 열심히 종교적 믿음을 따른다. 



미국에서 흔히 접하는 유대-기독교 윤리(Judeo-Christian ethic)는 사실 쇼이다. –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선전활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신화와 관련하여 마지막 언급을 한다. 성경에, ‘유대인이 아니지만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를 경계하라. 왜냐면 그들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언급된 이 사람들이 아슈게나지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Israel Stirs Perpetual War – 이스라엘은 영구적인 전쟁을 획책한다.



성스러운 땅에는 평화가 가득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평화 대신 전쟁과 전쟁준비가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은 전 세계 4위로 알려져 있다.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 탱크 및 기타 전쟁 장비와 더불어 이들이 최신 장비인 것을 고려하면, 이스라엘을 군사력은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육군에서 약점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스라엘 육군의 약점을 말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개입한 전쟁을 잠시 살펴보자.-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한 이후로, 평균 매 8년마다 전쟁이 있었다. 



1948년 전쟁 – 이스라엘이 스스로 국가라고 선포한 후,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 이스라엘의 육군은 Irgun과 Stem Gang 이라는 테러 그룹을 구성하여 조직하였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유는 살인과 테러로 시오니스트들이 빼았은 땅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팔레스타인은 평화로운 민족이었으며 군사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련, 폴란드 그리고 독일에서 시오니스트들은 군사적인 전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주 - 이르군단(團): 유태주의자 군사 지하 조직; 주로 제2차 세계 대전 후 영국의 Palestine 통치하에서 활동했다.



여기에 더불어 시오니스트들은 미국에서 받은 엄청난 양의 무기와 공산주의 국가에서 밀수한 무기로 무장을 하였다. 결국 아랍인들은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였다. 



1956년 – 이집트땅에는 수에주의 운하가 있었다.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나세르는 이 운하에서 영국을 몰아내고 대신 이집트가 운하를 운영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제국주의 영국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공모하여 이집트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집트가 거의 패배할 무렵에,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철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 미국의 군사력은 이미 이들 국가에게 철수를 명령할 정도로 강하였고, 이 세나라는 철수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있어서 미국의 대통령이 자국의 이익을 이스라엘의 이익에 앞서서 내세운 유일한 사건이다. 

1967년 전쟁 –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 이스라엘 두 국가의 긴장이 형성되었다. 



Map of Greater Israel -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소련은 이스라엘을 돕기 위하여 속임수를 사용하였다 : 이집트에 있는 소련대사는 나세르 대통령에게 전쟁으로 위협만 하고 실제 공격은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대신 이스라엘에 있던 소련 대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전쟁으로 위협하고 즉각 공격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기만적인 속임수는 이스라엘이 아직 전쟁준비를 마치지 않은 이집트 군대를 6일만에 격파 할 수 있게 합니다. 나일강과 유프라케스강 사이에 있는 지역을 접수하는 것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오랜 바램이었다. 이집트와의 전쟁 중에 빼았으려고 한 시나이 반도와 가자기구 외에도, 이스라엘은 요르단 서안과, 시리아의 영토이었던 골란 고원를 빼앗고자 하였다. 그래서 1967년 전쟁 중에 이스라엘은 속임수를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라디오 주파수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가로채어 그 내용을 변경하고 원래 주파수의 목적지로 보낼 수 있는 장비가 있었다. 전쟁 중,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요르단, 시리아로 가는 메시지를 가로채 이것을 변조하였고, 요르단과 시리아가 전쟁에 개입하게 하였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에게 패배하였고,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뿐만이 아니라 요르단 서안과 골란 고원을 차지 하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공격한 1967년 전쟁은 종종 6일 전쟁으로 불리는데, 사실 이것은 전쟁으로 볼 수 없다. 이 당시 아랍 국가 중 가장 강력했던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거의 전쟁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위에서 소련과 이스라엘의 속임수를 설명하였다. 1967년 전쟁은 소련과 이스라엘이 합작으로 벌인 기만적인 테러행위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소련은 그 태생자체가 유대정권이었다. 소련을 만든 볼세비키 도당 자체가
주로 유대인들이 핵심으로서 러시아의 노동자,농민을 선동해서 만든것이다. 물론 혁명자금역시
미국과 유럽의 유대자본이 대준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돕는것은 당연했다.)





Israel's Attack on the U.S.S. Liberty – 미국 자유호(배)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격





1967년 전쟁 중, 가장 대담한 행동이 감행되었다. 미국적 선박 USS 자유호를 미국의 친구라 불리는 이스라엘이 공격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기만적인 방법으로 이집트를 공격하고 있을 때, 미국의 감시선 USS 자유호는 이스라엘의 해안가에서 전쟁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었다. 



USS 자유호가 이스라엘의 기만적인 방법을 알아챘고,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직시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증거를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이스라엘의 비행기와 어뢰정이 자유호를 공격하였으며 침몰이 공격의 목표였다. 만약 배가 침몰하면, 증거는 사라질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은 이집트가 이런 짓을 했다고 주장 할 수 있었다. – 그리고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은 거짓말을 통하여 이집트에게 미국인들의 분노를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용감한 자유호의 승무원들은 배가 침몰되지 않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동맹인 미국을 향하여 기만적인 전술을 사용하려다 실패 하였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37명의 승무원이 사망하였으며 171명의 승무원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은 이 공격이 실수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생존한 승무원의 증언 및 다른 증거는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공격한 것임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공격 부분은 시오니스트가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에서 삭제되었다. 시오니스트들이 미국인들에게 말해준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 선박을 공격하였으며, 이것은 실수에 의한 것 이다. 



미국 정부에 의한 조사는 흐지부지 되었고 이 일은 빠르게 잊혀졌다. 이것은 시오니스트의 영향력이 미국 정부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만약 언론이 그 의무를 다하여 공격과 관련된 진실을 보도하였다면, 미국정부가 이 사건을 덮어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 있는 시오니스트 언론이 미국인들에게 왜곡된 보도와 진실을 숨기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1973년 전쟁 – 1967년 이스라엘과 소련에 의하여 기만적으로 벌어진 전쟁의 결과, 아랍인들은 즉시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자 하였다. 1973년에 전쟁의 준비가 되었다. 

비록 여러 아랍국가들이 군대를 준비하였으나, 이들은 외교적,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에 있는 시오니스트 형제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미국이 이스라엘을 계속 지원할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계속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스라엘과 외교적 협상을 하는 것이 의미 없는 것임을 알아채고,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는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승기를 잡았다. 

이스라엘이 수세에 몰리자, 미국 내 막강한 시오니스트들은 미국 정부에 힘을 행사하였고, 미국 정부는 그들의 주인은 시오니스트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어마어마한 전쟁물자가 이스라엘로 공수되어 소멸중인 이스라엘의 전력을 강화했다. 



주) 이 4차 중동 전쟁에서 북한의 활약으로 이집트가 초반에 승기를 잡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고로 “화폐전쟁- 수홍빈 저”에 의하면 이 전쟁은 이해 5월 빌더버그 그룹에서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금의 기반이 없는 달러가 계속 수세에 몰리자 전쟁을 일으켜 석유값을 무려 400% 인상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미국의 원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세를 돌리고 승전할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지만, 미국의 군수물자가 대규모로 이스라엘로 공수되는 관계로 인하여 정작 미군은 군수품 부족에 직면하였으며, 그 힘이 약화되었었다. 

미국 관리들은 철저하게 시오니스트들의 영향하에 있었습니다. 미국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요청을 하면, Ft. Bragg, N.C.에 있는 82 공수 사단과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을 파견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힘있는 시오니스트들의 비위를 맞추고자, 미국 관료들이 자신들의 자식들을 시오니스트/막시스트 국가인 이스라엘에 파견하여 희생시키려고 한 것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가족 중 젊은이가 이미 미군에 복무하면, 그의 가족들은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전쟁이나, 이것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만 합니다. 왜냐면 미국 정부는 미국 시오니스트에게 굽신대면서 미국의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 이 젊은이들은 시오니시트/막시스트 이스라엘 편에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미국의 젊은이들이 향후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사망한다면, 이 책임은 미국에 있는 시오니스트와 이들에게 복종하는 워싱턴의 정치가들에게 있습니다. 





New York/Moscow/Tel Aviv Triangle –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소련이 이념적으로 동맹이라는 사실에 꽤 혼란스러울 것이다. – 이 두 국가 모두 칼 막스의 이념을 따르고 있으며, 두 국가 모두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소련은 이스라엘의 적인 아랍에게 무기를 지원하여 동시에 미국은 이스라엘의 무장을 지원한다. 

시오니스트/볼세비키 유대인들이 벌일 수 있는 속임수와 1973년 전쟁에서 발생한 속임수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잠시 이전의 역사에 대하여 부연 설명을 한다. 



1831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대규모의 유대인이 이주를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공산주의 유대인들이었다. 많은 수의 공산주의자/볼세비키 유대인들이 뉴욕에서 자리를 잡았고, (당시)뉴욕은 ‘허드슨의 모스크바’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공산주의 정책이 모스크바가 아닌 뉴욕에서 결정된다고 여러 좋은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하였다. 이것이 사실인 아닌지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뉴욕의 공산주의/볼세비키 유대인들과 모스크바의 공산주의/볼세비키 유대인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를 주도하는 공산주의/볼세비키 유대인들간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소재한 미국 정부를 통제하는 시오니스트들의 힘은 뉴욕의 공산주의/볼세비키 들로부터 나온다. 뉴욕에서 결정을 하고 명령을 내리면, 이것은 미국 전역의 시오니스트 네크워크에 전파된다. – 이 네트워크는 연방정부의 경제, 정치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주 정부, 그리고 중소 도시의 자치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을 통제하는 시오니스트들의 힘은 뉴욕을 기점으로 하여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를 구성하고 공산주의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1973년 전쟁을 보면,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소련이 이집트와 다른 아랍 국가들에게 무기를 팔아 주었으며, 1973년 전쟁에서 소련이 아랍을 지원하였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행위는 사기였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소련이 합작으로 벌인 사기술의 일환이며, Golda Meir-Stalin/Kaganovich Pact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 



Golda Meir는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Milwaukmee, Wisconsin에서 성장하였으며 1921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1949년 Golda Meir는 소련 주재 초대 이스라엘 대사가 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사이자, 볼세비키 유대인인 Golda Meir는 두 명의 소련 대표를 만난다:볼세비키 유대인인 Kaganovich, 볼세키비 유대인과 결혼한 Stalin. 이들은 비밀 협정을 작성하였다. 
(스탈린은 언론에선 러시아인이라고 위장시켜 주지만 사실과 다르다. 스탈린은 그루지야 태생
유대인이며 러시아를 공산화시키기 위해서 러시아로 내부로 잠입한 후에
이름과 성을 러시아식으로 고친것 뿐이다.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로 가면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이름과 성을 그나라 식으로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스라엘의 협정문



1.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영토 내에 어떠한 서방의 군사기지도 허용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군사기지

2.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내에서 공산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

3.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협정도 체결하지 않는다

4. 이스라엘은 전 세계 유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특별히 미국이 서방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아랍보다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게 한다. 

5. 이스라엘은 막시스트 공산주의 경제를 계속 유지하며, 어떠한 자유 기업활동도 방지한다. 



소련의 협정문



1. 소련은 진정한 의도를 감추기 위한 위장작전으로 아랍을 선호화는 정책을 표명한다. 아랍인들에게 지원을 해주나, 이것은 결코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무찌를 수준은 아니다. 

2. 소련은 소련 위성국가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을 갈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만약 이 숫자가 부족한 경우, 소련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민 갈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 

3. 소련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비고 – 이스라엘과 소련의 정보기관 협의문은 서로 교환되었다. 



이 협정문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면, 소련과 시오니스트/막시스트 이스라엘의 목적은 중동에서 평화 대신 이스라엘과 중동국가간의 분쟁을 야기하여 모든 아랍국가들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소련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이다. 



1973년 전쟁에 있어서, 이 협정문의 한 부분이 현실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아랍인들에게 지원을 해주나, 이것은 결코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을 무찌를 수준은 아니다. 1967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기획할 때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의 동맹인 소련제 무기로 대항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Golda Meir-Stalin/Kaganovich 협정에 의하여 아랍의 무장이 결코 이스라엘을 격파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소련이 아랍에게 지원한 무기는 단순히 이들이 소련의 덫에 걸려들게 하는 미끼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미국에 있는 그들의 형제들이 미국정부를 움직여 아랍인들을 쳐부술 엄청난 양의 전쟁물자를 줄 것임을 알았으며, 필요 시 군대까지 보내줄 것도 알고 있었다





1973년 전쟁이 개시되자, 이스라엘은 요르란, 이집트, 시리아와 이라크의 향상된 전쟁능력에 깜짝 놀랬다.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첫 번째로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라는 물의 장벽을 통과하여야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모래와 먼지의 장벽을 통과하여야 했다, 이 뒤에 세 번째 장벽이 있었는데, - 이스라엘의 방어라인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방어라인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에 대비한 프랑스의 마지노 라인보다 강하였다. 



그러나 이집트는 기발한 방법으로 수웨즈 운하를 통과하였고, 모래와 먼지의 장벽을 지나 수시간 만에 이스라엘의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이집트 만세) 이스라엘은 곤경에 처해졌고, 아랍인들은 승기를 잡았다. 



번역자 주) 이때 이집트군이 사용한 방법이 독일제 펌프를 이용하여 운하의 물을 퍼올려 모래/먼지 장벽에 뿜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물대포인데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으로 생각한 방어막을 아주 쉽게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전쟁 지도부의 전원 자결을 언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냥 말 나온 김에 하지 아쉽네요) 그리고 야사에 하면, 이 때 북한 고사고문단의 및 북한 비행기 조정사들의 활약이 대단하였다고 합니다. 사다트는 북한에 고마움을 표하고 자신이 권좌에 있는 동안은 대한민국과 수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사다트 집권시에는 이집트와 국교를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 인터넷 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계획된 대로 – 이미 언급하였듯이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가 미국으로부터 공수되었으며, 필요 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Ft. Bragg, N.C.에 있는 82 공수 사단과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을 파견할 준비를 해두었다. 미국에게 다행스럽게,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미국이 파견될 필요는 없었다. 이스라엘에 공급된 무기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러나 아랍의 힘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아랍인들을 땅을 빼앗지 못할 정도로 강하였다.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일부분을 되찾았다.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는 아랍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소련이 바라지 않는다는 알아차렸다: 소련이 이집트에게 팔아먹은 무기는 이집트를 소련의 휘하에 두려고 만든 덫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다트는 소련의 군사 고문과 민간인 기술자들을 이집트에서 추방하였다. 





1982 Invasion of Lebanon – 1982년 레바논 침공



이스라엘에서, 대부분의 유대인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과 공격적인 행동에 지쳐왔으며 평화를 원한다. 오로지 공산주의자만이 전쟁을 원할 뿐이다. 슬프게도, 이들 공산주의자들이 이스라엘에서 힘있는 자들이다. 

1982년에 이스라엘이 레바논은 침공한 사건은 이스라엘 국민들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 군사적인 시오니스트들도 분열되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레바논을 공격한 이유가 “PLO의 뿌리를 없애 이들이 이스라엘의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였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 이들은 지난 11개월 동안 PLO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수립하기 위하여 벌인 노력을 언급하였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막시스트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레바논을 침공한 것은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전쟁” 정책의 한 면일 뿐이다. 


2. 물은 중동에서 귀중하다. 더욱이 이스라엘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수립한 이후부터, 이스라엘은 Lintani강물을 이스라엘이 사용하기를 원하였으며. 이 물을 사용할 방법은 오로지 전쟁으로 빼앗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며칠 만에 전쟁이 종료되고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다른 아랍인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앞선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침략군에 대항하여 영웅적으로 싸웠다. (아랍 만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몇 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다 많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전사하였고, 이스라엘 전역으로 전쟁에 대한 반대의견이 일어났다. 군대 내에서도 많은 수의 군인이 군을 떠나거나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라는 명령을 거부하였다. 



아랍에게 레바논에서 근무 중이던 250명의 미 해병의 죽음에 대한 비난이 퍼부어졌다. 이것은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던 미국의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이 미해병을 살해하였다는 증거가 없었다. 실제로 신뢰할만한 레바논의 보도에 의하면 미 해병에 대한 테러공격은 이스라엘 군과 모사드가 기획하였다. 이 경우, 실제 누가 미해병을 공격하였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 이스라엘인들이 계획을 하였고 공격을 사주하였다. 시오니스트/막시스트들이 위장된 계획을 짜고, 더러운 일의 실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이들에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예를들어 어느나라 대통령이 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좌파나 민주화인사로
위장해있는 그들의 하수인을 고용하거나, 혹은 권력욕이 있는 자를 고용해서 그 대통령을 암살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곤 암살이 끝나면 잽싸게 그자를 죽여서 입을 막는 수법을 잘 쓴다.
몇십년전에 동북아의 어느 나라에서도 그들에 대항하는 한 지도자를 이런식으로 죽였다. 물론 국민들은
모르고 있을테지만 말이다.)



미 해병기지에 대한 공격을 사주함으로써, 이스라엘 매파는 미국인들이 아랍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미국을 전쟁에 개입시켜 이스라엘이 아랍에 벌이는 호전적인 행위에 더 큰 협력을 얻고자 하였다. 다행히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시오니스트들에 테러를 저지르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씨우는 좋은 예는 Lavon affair이다. 

1954년 한 무리의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 있는 미국대사관과 미국기관에 연속적인 폭탄을 설치하였다. 이들은 이집트가 이 폭발에 대한 비난을 받을 것이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절될 것이라 예상했다. 



다행히, 이집트 당국은 폭탄을 설치하던 이스라엘 첩자를 잡았고, 이스라엘의 음모가 폭로 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기만적인 Lavon affair애 대하여 알지 못한다.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은 USS 자유호에 대한 진실을 보도 못하였듯이 Lavon affair에 대한 진실도 보도하지 못하였다. 

언제 이스라엘이 또 다른 전쟁을 획책할까? -1985년?-1986년?. 이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미국인들이 시오니스트/막시스트 이스라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미국 시오니스트에 복종하는 워싱턴 정치인들의 행위를 멈추고, 미국 납세자의 돈이 이스라엘의 전쟁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멈출 땔까지, 이스라엘은 또 다른 전쟁을 획책할 것이다. 





Weakness in Israel's Military – 이스라엘 군대의 약점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 군사력의 기반은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지불된 막대한 양의 최신 무기에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 심각한 약점이 계속 확대되어 오고 있다. 이 약점은 2가지 원인이 있다. 



1.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전쟁을 하고 전쟁은 준비하면서, 이스라엘의 젊은 인재들이 이스라엘을 떠나거나 또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군 면제를 받는다. 이스라엘 육군은 인원부족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서 그 인원이 많은 동성연애자들도 공개적으로 군인으로 모집한다. 1976년 한 이스라엘 육군 장교는 의회에서 증언하기를, 동성연애자를 모집하지 않은 경우 충분한 병력을 보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돈을 받고 전투를 하는 용병을 고용하고 있다. 



2. 또 다른 약점은 이스라엘 육군 내에서 아슈게나지 유대인들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 간에 악감정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거의 모든 장교는 아슈게나지 유대인이고, 실제 전투에 반드시 참가하여야 하는 하급 병사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육군 내에서 아수게나지 유대인에 의한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의 차별 대우 때문에,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의 폭동 가능성이 높다. 




A Warning to Mr, Mrs and Miss America – 미국인들에 주는 경고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막시스트/시오니스트 유대인과 미국의 막시스트 시오니스트들은 미국이 중동전에 개입하여 이스라엘의 편에서 싸우도록 함정을 만들어 왔습니다. 1982년 레바논에 미국의 해병이 파견되었을 때 이들의 함정이 거의 성공하였습다. 레바논에서 죽은 250명 해병의 피가 이들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오니스트 손에 흐리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시오니스트/막시스트 이스라엘의 진실을 알게 되지 못하면, 곧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 미국을 함정에 빠트려 미국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랍인들과 전쟁을 벌이게 할 것이 확실 합니다. 

더 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영리한 살인자 시오니스트에 의하여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 시오니스트들 은 고의적으로 미국을 제 1차 세계대전, 제 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시오니스트 국제 은행가와 다른 시오니스트들이 이들 전쟁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 동안, 미국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들은 자신들의 아들과 오빠를 잃어 버린 슬픔에 신음할 것입니다. 

당신은 언젠가 이들 시오니스트의 계략에 의하여 당신의 아들과 오빠를 잃고 슬픔에 신음하시겠습니까?





Crime in Israel - 이스라엘의 범죄



이스라엘(예전의 팔레스타인)은 예전에 예수와 마호메트가 활동하였던 장소이기에, 이들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종교적인 땅과 유적지를 존중할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아랍 무슬림인과 아랍 기독교인들은 이 땅의 성스러움을 존중하고 심지어 경배까지 한다. 오로지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이런 존중심을 가지고 있다. 95%의 유대인인 무신론자 또는 세속적인 휴머니스트로서 10계명을 따르지 않으며 다른 종교적인 제약(종교적으로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제약)도 없다. 



시오니스트/볼세비키 유대인들이 이 ‘성스러운 땅’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후, 모든 종류의 죄악이 이 땅에 퍼지기 시작하였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이 성스러운 땅은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다. 마약 거래, 마약 남용, 불법 무기 장사, 매춘, 도박, 노동 착취, 살인, 강탈, 협박, 보험 사기, 고리대금 그리고 정부관료와 경찰관의 부패.



이스라엘의 델아비브 근처에 범죄조직의 본거지가 있는 Bat-Yam란 곳이 있다. 범죄 조직의 많은 구성원은 교도소에서 출감한 사람이나, 전직 이스라엘 특공대원들로서 이들은 무기와 폭탄을 잘 다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정부와 경찰의 부패로 인하여, 이들 범죄조직은 이스라엘에서 공개적으로 활동을 한다. 다수의 경찰과 정부관료들이 이 범죄조직의 활동을 지원한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듣지 못하는데,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에서는 미국의 TV, 라디오, 신문들이 이것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몇몇 신문은 사실을 보도한다. 2년 전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40년 동안 달성하지 못한 것을, 이스라엘 마피아는 5년 만에 달성했다. 이스라엘 마피아는 중동에서 가장 거대한 불법 마약 수출망을 구성하였으며 주로 독일과 미국에 마약을 판매한다. 이들은 독일과 미국 내에서 판매망도 구축하였다. (이것은 미국 씨아이에이의 협력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씨아이에이는
남미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에게 마약을 재배시켜서 마약사업을 해왔다는 폭로가 인터넷에 수도없이
올라오고 있다.)



종교적인 믿음이 강하여 이스라엘 거주하는 소수의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떠날 돈이 없는 가난한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먹고 살만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떠났거나 떠날 계획이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 곳곳에 부정과 범죄가 침투하여, 멀쩡한 제정신의 유대인들이 이것을 견디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Israel's Arms Industry - 이스라엘의 무기 산업



테러, 폭력 그리고 전쟁이 이스라엘에서의 삶이어서, 군사 장비와 무기를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주요 산업 및 수출 산업이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 이러한 군사물자는 미국과 공산국가에서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서서히 독자적인 무가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시오니스트가 통제하는 미국 정부는 “ISREL FIRST – 이스라엘이 최우선”이라는 정책을 만들었는데, 이 정책은 미국 경제에 상당한 해를 입혔다. 



미국은 또한 이스라엘이 공장을 세워 전자 장치, 의약품, 화학제품, 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 것을 도왔는데 이 모든 제품들은 미국땅에서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 이익을 만들 때, 미국의 노동자들은 실업 상태에 방치되었다. 



전쟁 물자를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의 핵심 수출품이 될 정도로 성장하였다. “중동에서 공산주의 전파를 막는 국가”로 묘사되는 이 전쟁광 국가인 이스라엘은 돈만 준다면 그 누구에게도 전쟁 물자를 판매한다. –파시스트건 공산주의건 관계없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만든 무기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원조받은 무기도 판매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활동중인 소련군이 미국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이스라엘에서 선적한 것이다. 



앙골라에서 활동중인 쿠바군이 사용하는 무기도 미국제 무기인데 이 역시 이스라엘에서 선적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기 위하여 목슴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시오니스트가 점령한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미국의 무기가 수출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Israel's Racist Policies –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주의 정책



아슈게나지 유대인인 나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여 곤란을 겪었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에 대한 차별은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이다. 이 정책은 이스라엘에서 철저히 시행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분열시켰다. 

하루는 내가 델아비브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는 거의 만석이고 딱 한자리 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는 모로코에서온 5명의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이 먼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내가 히브리 언어를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나의 공부를 도와 주었다. 이때 파란눈의 나찌 스타일 경찰이 가페에 들어 왔다. 



그는 내게 명령하기를 “Kooshim로부터 떨어지세요”. ‘Kooshim’은 히브리 말로 검둥이란 의미이다. 

나는 대답하기를 “먹던 음식은 다 먹고요”

경찰은 권총을 뽑아들고 “당장 움직여”

“경찰이 시키는대로 하세요” 카페의 주인의 충고를 해주었고 나는 데이블에서 일어섰다

선채로 경찰은 내게 다가와 권총을 내 얼굴에 겨누고 명령했다”니가 먹던 커피와 빵을 바닥에 버려”

경찰이 내게 총을 겨누고 있어서 나는 언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닥에 커피와 빵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이곳에서 꺼져. 그리고 다시는 오지마”

나중에 나는 내가 무척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경찰은 나를 체포할 수도 있었으며, 이스라엘 법에 의하여 나를 쏠수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누구라도 경찰의 과잉대응이나 폭력에 대하여 신고를 하면 조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니다. 경찰은 고발한 사람을 두들겨 패면서 보복을 한다. 내가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여 좋은 집,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한 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나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하였다는 이유로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의 공격도 여러 번 받았다. 미국에서 건너와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과 결혼한 아수게나지 유대인들도 나와 똑 같은 대우을 받았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은 이들이 벌리는 인종차별주의의 희생물일 뿐이다. 



나는 종종 이스라엘의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이 유럽의 아슈게나지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 
“히틀러가 너희들을 더 죽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이 나쁜 놈들아” 



다음의 글을 주의 깊게 읽어 보기를 바란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공립학교를 다녔으며, 미국의 여러 곳에서 일을 하였고, 미 육군에서 2년동안 복무하였다.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나는 단 한번도 인종차별주의나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대인의 천국”이라는 이스라엘에서 인종차별주의로 수난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은 이스라엘에서 자행되는 인종차별주의를 보도하지 않는다. 미국에 사는 대부분의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인종차별에 대하여 모르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방문한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모른다. 관광객들이 이런 차별을 보지 못하도록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차별에 관한 사실이 널리 날려져 있어서, 이들은 이스라엘로 이민을 가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기술한 것을 읽어보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오로지 소수의 유대인들 만이 유대교를 믿는 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무신론자 이거나 신을 믿지 않는 휴머니스트들이다.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충실한 민족으로 묘사되는 것은 사실 거짓이다. 유대인들이 동일 민족이라는 것도 거짓이다. 현실에서 아슈게나지 유대인들과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이 갈린 것이 그 충분한 증거이다. 

인종차별주의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곧 망할 것이다. 





Communism in Israel – 이스라엘에서 공산주의



시오니스트들이 통제하는 미국의 언론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공산주의 전파를 막는 방어막이라고 떠들어 댄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이 좀 웃긴 일이다. 

그 동안 내가 기술한 것은 읽은 당신은, 이스라엘이 근본적으로 나찌 스타일의 파시즘이 혼합된 막시스트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엄청난 책이 발간되었고, 나는 몇 가지 사항을 첨언하고 싶다. 





1.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공산당의 활동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며, 역설적으로 아랍국가들은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외로 북예멘은 공산주의 활동을 허가하는데, 이런 저런 속임수로 인하여 북 예멘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많은 중동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에서 무기를 수입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미국으로부터 미국이 이스라엘에 원조하는 무기의 수준을 상쇄시키는 정도의 무기를 구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소련은 자국 내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경우, 상당한 인원의 이스라엘 이주를 허락해주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이들을 환영한다. 그런데 일단 이들이 소련에서 나온 후 대부분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인원이 이스라엘대신 미국으로 이주한다. 또한 이스라엘 건국 후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났다. 어떤 소식통에 의하면 100만 명이 떠났다고도 한다. 어떤 유대인들은 소련에서의 삶이 더 나았다고 소련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3.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전수하는 최신 과학기술이 소련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일은 텔아비브 남방 40Km 정도에 있는 Rehoovot 도시의 Weizman Institute에서 벌어진다. 

4. 이스라엘 의원 1/3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또는 막시스트이다. 
(공산주의 자체가 자본주의와 함께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두개의 시스템중
하나일 뿐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는다고 하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실제 중동국가들이 중동에서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고 있다. 이스라엘은 공산주의 운동을 뒤에서 조정하는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의 지부이다. 





Terrorism and Violence 테러리즘과 폭력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최초의 시오니스트 의회가 열렸고,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 당시 소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거의 모두 아랍인들과 피가 섞인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이었다.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수백년동안 평화스럽게 살아왔다. 





1897년 시오니스트 의회 이후, 아슈게나지 유대인들이 이주를 와서 그들이 살수 있는 능력껏 땅을 구매하였다. 그러나 1920년 까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2%만을 소유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고, 그 동안 유대인들의 대지 소유를 늘렸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땅의 6%도 안됐다. 



유럽에서 이주해오는 유대인들을 살게 하기 위하여 이들은 더 많은 땅이 필요하였으나, 팔레스타인인들은 땅을 팔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이들 공산주의 유럽계 유대인들(아슈게나지)은 땅을 얻기 위하여 한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 테러

팔레스타인을 향하여 처음으로 벌인 대규모 테러 행위는 팔레스타인 마을 Deir Yassin 에서 발생하였다. 1948년 4월 9일 밤에, 두 개의 시오니스트 테러조직인 Irgun 와 Stem Gang이 마을을 습격하였고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250명 이상을 죽였다. 



Deir Yassin마을의 습격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고 후일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 Menachem Beg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했던 학살은 정당할 뿐만이 아니라, 이 승리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건국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Deir Yassin의 대 학살은 팔레스타인이 공포에 떨며 자신들의 땅을 버리고 난민이 되는 시초가 되었다. 시오니스트 테러리스트들은 확성기가 달린 트럭을 몰고 다니며 거리에서 떠들어 댔다, 만약 팔레스타인이 떠나지 않으면 Deir Yassin에서 벌어진 일이 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시오니스트 테러리스트들이 한 짓을 보면 그 예로 :





l Balad Esh Sheikh에서 6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학살

l Sa'sa에서 20여채의 집을 없애 버리고, 60여명의 여자와 아이들을 학살

l 예루살렘 성 사이몬 수도원에서 근무하는 다수의 여인들을 살해 

l Lydda에서 250명 대량 학살

l Ed-Dawayimeh의 회교 마을에서 250명 학살(대부분 노인)

l Kafr Qasem에서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51명의 인부 학살

l Kaba Bir'im에서 거주하던 기독인 들을 추방하고 마을을 파괴함. 마을의 묘지도 파괴함 



불과 몇 달만에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과 다른 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하였고, 30만명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과 무슬림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거나 테러리스트들에 의하여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유럽에서 건너온 공산주의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그 집권세력이 되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 막시스트/시오니스트 그룹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다. 
(오바마의 비서실장이었던 엠마뉴엘의 아버지가 바로 이 테러조직 이르군의 핵심 간부였다.)





이스라엘이 국가를 선언은 1948년 5월 14일 이후, 이스라엘의 테러는 계속되어 팔레스타인을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쫓아내고 있다. 

1948년 이후, 350개의 기독교 교회와 무슬림 사원이 시오니스트의 테러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신을 믿는 미국에 사는 모든 종교인(기독교, 무슬림 그리고 유대인)에게 경종을 하나 울리고자 한다. 

시오니스트에 의한 종교의 파괴행위가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이며, 이스라엘에서는 거의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Zionist's 'Eliminate' Opposition – 시오니스트의 반대자 제거



시오니스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 누구라도 그들의 길을 방해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세계2차 대전중,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은 나찌에 협력하여 낮은 계층의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로 보냈다. 이것을 생각하면 시오니스트들이 252명의 유대인 이민자들이 타고 있던 Patria 선박을 바다에 침몰시킨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유대인은 시오니즘을 반대) 또 다른 사건은 760명의 유대인이 타고 있던 Stuma 배를 침몰시킨 것인데, 그 이유는 동일하다. 



심지어 세계에 잘 알려진 사람 역시 이 시오니스트의 테러와 폭력을 당합니다. 1948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평화적인 영토 분할을 위하여 유엔은 스웨덴의 Folke Bemadotte 백작을 중재자로 파견합니다. Folke Bemadotte 백작은 땅의 일부분은 이스라엘에게, 일 부분은 팔레스타인에게 주려고 하였는데, 모든 땅을 차지하려고 하는 시오느시트들은 이 백작의 중재에 분노하였습니다. 백작과 그의 운전사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암살당하였습니다. 시오니스트 은행가의 지원을 받는 시오니스트/볼세비키 유대인인 러시아에서 정권을 잡은 후 천만 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중동에서 이들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립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이들은 수천 명의 아랍인들을 죽였으며, 수십만 명의 아랍인들이 집 없는 난민으로 떠돌고 있습니다. 



질문이 한가지 생깁니다: 만약 시오니스트/볼세비키들이 아랍 전체의 통제권을 얻는다면, 얼마나 많은 아랍인들을 죽일까요? 만약 이들이 미국의 통제권을 얻는다면요? 이들은 이미 미국 전역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시오니스트들이 미국인들에게서 총기규제에 관한 권한을 획득하는데 성공하면, 이들이 미국을 완전히 접수하는 방법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Disaster Ahead – 재앙에 앞서서



Ephraim Sevilla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1971년 이스라엘로 이민을 왔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5년 동안 절망을 경험한 후, 이스라엘을 떠났고, 그가 이스라엘을 떠난 것은 다른 여러 괜찮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책 “이스라엘 안녕히”에서 Sevilla는 이스라엘이 앞으로 길어야 10년 정도 존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1975년에 책을 썼다. 



이스라엘은 1985년 이후에도 존속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Sevilla가 이스라엘은 파국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막시스트/파시스트 정책, 전쟁에 대한 집착 및 인종 차별주의는 이스라엘을 파멸을 끝자락에 몰아넣고 있다. 이스라엘의 타락한 지도자들과 힘있는 여러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몰락에 대비하여 미국에서 지원한 돈과 이스라엘로 입금되는 유대인들의 기부금을 대량으로 횡령하여 외국은행 계좌에 넣어 두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정책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자유 세계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의 행위에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특별히 미국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만약 지금 당장 이스라엘이 망하고 다 이상 국가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이 훨씬 좋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는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게 할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멸망에 다다르면,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에 의하여 다음의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1.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대 규모 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의 규모는 이스라엘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이다. 그러면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는 미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미군을 이스라엘로 파견할 것이다. 

모스크바가 군사적인 참여를 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모스크바는 뒤에서 앉아 미국이 약해지는것을 목격할 것이여, 이스라엘이 아랍과 싸우는 것을 도울 것이다. 

전쟁이 진행되던 어떤 시점에서, 미군이 전쟁에 깊이 개입되고 미국인들이 전쟁에 실증을 날 무렵에, 시오니스트를 지원하는 국제 은행가들이 움직일 것이다. 이들 은행가들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 위원회(FED)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이 힘을 이용하여 이들은 1929년에 주식시장을 폭락시키고 1930년대에 대 공황이 오게 한 것과 같이 미국 경제를 파괴시킬 것이다. 

미국의 화폐인 달러는 금이나 은 또는 다른 값어치 있는 물건과 태환이 되는 것이 아니라서, 달러는 쓸모 없는 종이가 될 것이다. 

결국 음식과 기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고, 미국인들은 이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New States Constitution”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시오니스트 국제 은행가와 볼세비키 유대인의 독재를 펼치는 전 세계 단일 정부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중동에서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발생할지는 신과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이 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미국 시민들
아랍인들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과 자유와 정의의 편인 아수게나지 유대인들

그리고 이익을 보는 집단은

시오니스트 국제 은행가와 볼세비키 유대인들





2. 만약 미국 납세자들이 “이제 그만”하고 일어선다면, 이 일을 대비하여 다음의 백업 플랜이 작동할 것이다. 



파산하는 이스라엘을 유지하기 위하여 미국납세자의 돈을 엄청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이와 동일한 시점에 미국 납세자들이 “이스라엘의 지원은 이제 그만!” 하고 또 일어설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에서 모스크바가 움직일 것이다. 



미국의 힘을 없애기 위하여, 시오니스트 은행가들은 경제 붕괴를 만들 것이고 미국을 무질서의 카오스 상태로 던져버릴 것이다. 



소련과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이 아랍을 상대로 어떤 군사행동을 할지는 이들 /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와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나, 아마도 아랍인들의 원유 시설을 먼저 파괴할 것이다. 



위 2개의 시나리오중 어떤 것이 작동 되던 간에 



이 일로 패자가 되는 것은 



미국인

아랍인

세파라딕(Sephardic) 유대인들과 자유와 정의의 편인 아수게나지 유대인들 



그리고 승자가 되는 것은 



시오니스트 국제 은행가와 볼세비키 유대인들





떠오르는 질문 한가지: 언제쯤 미국인들이 이 뉴욕/모스크바/델아비브 삼각편대를 멈출 수 있을까요?



The Stakes — Freedom or Slavery



‘전쟁의 군주’인 시오니스트/볼세비키의 활동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2개의 핵심 사항이 있다. 



1. 시오니스트/볼세키비 유대인들의 3각 연합에 있어서 그 한 축이 뉴욕이다. 볼세비키가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을 때 뉴욕에서 금융 및 조직을 지원하였다. 이 혁명은 이 삼각동맹의 또 다른 축을 소련에서 만들었다. 



만약 뉴욕의 시오니스트/볼세비키 유대인들이 국가 단위의 네트워크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공산주의는 오래 전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양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시오니스트들이 계략을 사용하여 미국이 계속 공산주의를 돕고 있는 것이다. 




2. 만약 미국의 언론이 시오니스트/볼세비키 활동에 관한 진실을 보도하였다면, 공산주의 국가는 만들어 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현재 미국민들이 당면한고 있는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오니스트/볼세비키들은 너무도 똑똑하여, 이들의 미국의 시스템을 집어 삼키려고 하기 전에, 주요 언론부터 접수하여 통제하였다. 이 통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진실을 호도하고나 감추어 일반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다


Exposure is the Solution – 진실의 폭로가 문제의 해결책이다.



1920년 Henry Ford, Sr.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만약 미국인들이 유대인 집단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것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Henry Ford, Sr.가 한 말은 만약 미국인들이 진실을 알게 될 경우, 시오니스트/볼세비키의 음모를 멈추는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미국인들과 여러 자유 세계에 당면한 문제의 위험을 알리고는 있으나, 아직 멀었으며 별로 효과도 없었다. 다음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조용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l 보통 미국인으로서 그의 자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