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이야기

주역에게 길을 묻다

코알라 아빠 2017. 9. 3. 11:31
제목 : 주역에게 길을 묻다 (11699)번[텍스터의 서재] 
저자 : 맹난자
출판사 : 연암서가    [출판사의 서재]
출간일 : 2012-12-6
분야 : 인문/사회 도서평가 :



‘주역(周易)’의 역이 도마뱀을 상형(象形)한 글자라는 점은 유명하다. 도마뱀을 뜻하는 척(蜴)이 변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라는 점 때문에 진시황제의 분서(焚書)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이다. 중요한 점은 역이 변화와, 변화하지 않는 규칙성을 함께 뜻한다는 사실이다. 수필가 맹난자 선생의 주역 해설서인 ‘주역에게 길을 묻다’를 읽는 것은 이런 배경 지식 외에 동서양의 많은 유명인들이 ‘주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저자는 ‘주역’을 알면 생사를 알 수 있고 귀신의 정상(情狀)까지 알 수 있다는 이끌림 때문에 주역에 빠지게 되었다(52 페이지)는 ‘주역’ 전문가이다. 특히 모든 사물은 시원(始原)을 밝히면 끝으로 돌아감이니 시작과 끝을 알기 때문에 생사의 문제도 알 수 있다는 ‘원시반종 고지사생지설(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이란 대목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가 특히 많이 되뇌인 구절은 음양합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하다는 뜻의 ‘음양합산이기현(陰陽合散理機玄)’이라 한다.(138 페이지)


‘주역’은 점서(占書)임에도 경전으로 대접받는다. 그 이유는 그 말씀이 상황에 맞추어 각자 나아갈 바를 가리키기 때문이며, 윤리적 지침을 담은 의리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에 능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며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무심(無心)인 즉 무동무효(無動無爻)이니 어디에 길흉이 따라 붙겠는가?란 말을 소개한다. ‘주역’을 탐독, 활용한 유명 인사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경우가 공자, 헤르만 헤세, 칼 융, 소동파, 토정 이지함, 주희(朱熹),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 보르헤스, 백거이 등이다.


‘주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례에 대해 말하자면 동서양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도 현재까지 변함 없는 애정의 대상으로 손꼽히는 책이 ‘주역’이다. 공자는 나이 오십에 ‘주역’을 손에 든 이래 73세에 타계할 때까지 수불석권(手不釋卷)했다. “역을 지은 사람은 우환이 있었을 것”이란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공자는 주역 원전에 해설을 붙임으로써 ‘주역‘을 빛을 보게 했다. 공자는 자신은 역을 기술하기만 했지 창작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의 술이부작(述而不作)이란 말을 언급했다.


공자는 역을 가지고 말하려는 자는 풀이를 숭상하고, 행동하려는 자는 변화를 숭상하고, 기술적 응용을 원하는 자는 상(像)을 숭상하고, 미래를 예견하려는 자는 점을 숭상한다는 말도 했다. 공자의 ’주역‘ 관련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자의 ’계사전(繫辭傳)‘으로 인해 ’주역‘이 철학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계사전‘은 공자의 주역 해설서인 십익十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주희(朱熹) 역시 주역과 깊은 관계를 가졌던 인물이다. 밝을 희(熹)라는 이름과 반대되는 어두울/ 그믐 회(晦)라는 단어가 들어간 회암(晦菴)이라는 호를 가졌는데 이는 밝은 것을 어둡게 하라는 의미의 ‘주역’의 ’회기명야(晦其明也)‘라는 구절에서 왔다. 주자는 역은 다만 복서(卜筮)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본시 ’주역’을 점을 치는 책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합리주의적인 역학자들은 주역이 지닌 점서로서의 특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경시했고 역은 점치는 것이라기보다 여러 번 읽고 깊이 음미함으로써 그 진의<理>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87 페이지)


저자 역시 역학은 귀신에게 사람의 운명을 묻는 점술의 차원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밝히고 자신을 성찰하는 학문의 하나라는 견해를 취한다. 저자에 의하면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조상의 위상 및 영혼과 DNA, 정신과 가정 교육이 후손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저자의 ‘주역’ 스승인 도계(陶溪) 박재완 선생의 말이다.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던 토정(土亭) 이지함도 ‘주역’과 관계가 깊어 그 도를 몸소 실천한 도가(道家)풍의 처사(處士)였다.(108 페이지)


토정은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다. 반면 그의 스승 서경덕은 우주의 원리를 궁리하는 데 몰두했다. 앞에서 무동무효를 이야기했는데 11세기 중국 남송의 소강절(邵康節)은 “착한 것에 복을 주고 지나친 것에 화(禍)를 내리는 것은 귀신이지만 그 귀신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실”이라는 말을 했다.(127 페이지) 이 말로써 우리는 ”역에 능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역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라이프니츠는 ’주역‘의 자연현상에 대한 우주발생 구조에 깊은 매력을 느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176 페이지) 그는 역의 음양을 각각 기호화하여 구체적인 현실계를 기호로 환원, 기호로써 세계를 내다보려 했다. 상대적 추상에 근거해 현상의 변화 추이를 설명하는 역의 철학은 동적 우주관에 근거한 철학의 일종이다.(193 페이지) 아인슈타인은 음과 양의 상대적 관점을 받아들여 특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물질 즉 음(陰)이 에너지 즉 양(陽)으로 변하고, 그 역(逆)도 성립함을 말하는 음양의 법칙을 E=mc²이라는 수식 즉 질량 에너지 등가(equivalence)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다.


닐스 보어의 상보성(相補性) 원리야말로 역과 밀접한 사유체계이다. 역의 대립 개념이 서로 대극 또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음양론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보어는 주역의 태극 문양이 그려진 옷을 디자인해 입고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눈길을 끈 것으로도 유명하다. 융은 인간 유형을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그 유형 중 내향적 직관형의 인물들은 구체적 현실에서의 가능성보다 정신세계에서의 가능성을 더 잘 파악하는 유형으로 귀신 이야기나 이상 심리학에 경도되기 쉽고 신비주의자나 몽환가로 비친다고 한다.


릴케, 예이츠, 소동파, 미수 허목, 헤세, 에즈라 파운드가 그렇고 융 자신도 이에 해당한다. 융은 무의식이 단지 과거의 창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정신적 상황과 생각들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213 페이지) 개인의 정신만을 문제삼은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인류의 정신을 문제삼았다.(214 페이지) 의식과 무의식의 불합치에서 비롯되는 정신분열을 통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융은 무의식 안의 내용을 의식화시키는 방법으로서 ’주역‘을 주목했고 주역 점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원형의 주변에서 동시성의 원리가 일어나며, 심혼(心魂: psyche)의 깊이에는 시간과 인과율을 초월하여 상황을 재구성하고 상황의 통합을 재결성하는 초인과적 요소인 원형이 있다고 지적한 융은 ’주역‘의 괘(掛: 걸 괘, 점칠 괘)를 통해 무의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217 페이지) 우리가 융의 아니마, 아니무스로부터 읽게 되는 것은 음(여성) 가운데 양(남성)이 있고 양 가운데 음이 있다는 ’주역‘의 부음이포양(負陰而抱陽)이다. 융은 자신이 하는 연구의 주요 관심사는 노이로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누미노제(신성한 것)에 접근하는 것으로 보았다.


융에 의하면 누미노제를 체험하는 사람은 질병의 저주에서 풀려나며 병 자체가 누미노제적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226 페이지) ’역경‘은 의식이 막다른 한계에 부딪힌 절망의 상황에서 소용된다. 융은 의식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무의식의 내용이 활성화된다고 보았다. 이때 의식의 내용에 대응하는 무의식의 내용이 활성화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에 배열이 생긴다고 보았다. 괘(주역의 핵심은 64괘와 각 괘에 따르는 6개의 효爻이다. 64괘, 384효, 爻: 엇갈릴 효)는 인간 마음 속의 이미지가 나타난 것으로 그 이미지를 해석함으로써 미래를 아는 것이다.


’주역‘의 핵심은 괘이며 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미지가 상징화된 것으로 점을 치는 사람과 치러 온 사람의 타이밍이 맞으면 점기(占機)라 해서 시간과 공간, 영적 능력이 한순간에 결합하는데 그 신성한 의식이 괘로 나타나고 이때 상(象)을 보고 상징적 의미를 유추해내는 자기만의 해석이 필요하다.(230 페이지) 융은 일찍이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이다. 융은 ’주역‘은 미숙하고 유치하여 장난기 있는 사람에게도, 주지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사람에게도 어울리지 않고 명상적이고 반성적인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말했다.(248 페이지)


헤세 역시 ’주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사상가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작인 ’유리알 유희‘는 ’주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헤세가 흐르고 변화하는 것 가운데 변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것 즉 ’주역‘의 변역(變易)과 불역(不易)의 이치를 내포한 정신적인 삶 자체의 지속적인 일관성을 크네히트(’유리알 유희‘의 주인공)의 환생으로써 설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란 의견을 제시한다.(256 페이지)


크네히트는 1) 기우사(祈雨師)로 처음 세상에 왔고, 2) 고해신부, 신학자, 인도의 왕자 다사를 거쳐 마지막 다섯 번째로 유희(遊戱)의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로 세상에 왔다. ’유리알 유희‘에는 카스탈리엔이라는 교육주(敎育州)가 나온다. 지리적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카스탈리엔은 바깥 세계 즉 삶의 공간과 대비를 이루는 대안 세계이다. 저자는 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카스탈리엔에 착안해 ’주역‘의 64괘 가운데 교육에 관한 괘는 산천대축과 산수몽 등 단 두 가지라 설명한다.(269 페이지)


산천대축이 혼자 노력해 쌓는 것이라면 산수몽은 제자와 선생의 대면이 전제된다. “대부분 헤세의 작중 인물은 내면 탐구자로서 도를 구하는 제자와 깨우침을 일러주는 스승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269 페이지) 산수몽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몽은 蒙으로서 ’격몽요결’과도 연관이 있다.)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는 ’유리알 유희‘가 완전하게 아름답고 조화로운 대우주의 질서에 따라 구성된 작품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헤세에 경도된 탓일까. 옥타비오 파스도 ’주역‘과 결코 가볍지 않은 관계를 맺었지만, 그리고 인상적일 만큼 동양 사상에 정통했고 인간 존재 조건의 핵심을 에로스로 파악한 사람이지만 헤세에 비해 관심을 덜 끄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주역‘이 윤회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헤세가 크네히트를 여러 차례 환생하게 한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이겠지만 변화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상태를 구하는 ‘주역’의 영향을 받은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 언급한 인물 외에도 육자(陸子), 정선, 윤선도, 도연명, 제갈공명, 유비, 백거이 등이 두루 ‘주역’과 인연을 쌓은 인물들이다. 앞에서 역에 능한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저자는 역에 통달하면 천문과 지리에 통해 우주의 법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안다고 한다는 말을 한다.(361 페이지) “원래 ‘주역’의 괘는 어떤 모습을 형상(形象)한 것이며 괘에는 수(數)가 붙게 마련이다. 괘상과 괘수 즉 상수(象數)는 원래 자연의 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위로는 천문(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알며 상(相)을 보고 점을 치기 전에 미리 아는 것을 말한다.”(361 페이지)


나의 ‘주역에게 길을 묻다’ 읽기는 ‘주역’에 입문하는 것이 아닌 예비적 성격의 것이다. 나는 줄곧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한정하는 것에 반대해왔다. 융이 ‘주역’으로 점을 치고 임상에 응용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주역’으로 점을 치는 것 즉 ‘주역’을 구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 ‘주역’의 사유 체계를 응용해 물질 - 에너지 등가이론을 만들어내거나(아인슈타인), 부음이포양에 착안해 상보성 원리를 생각해내는 것(닐스 보어), ‘주역’의 역을 통해 ‘변하는 것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헤르만 헤세) 같은 응용과 관계된 것들이다.


‘주역’은 신비화할 필요도 없고 어리석은 것으로 도외(度外)시할 필요도 없다. 다만 비판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한 연구원은 “주역이 내어준 답이 길하다고 느껴진다면 일이 잘될 확률이 반에서 더 높은 쪽으로 갈 것이고 질문을 한 사람도 자신감을 가지고 더 많이 노력할 것이다. 만약 답이 흉하다고 느껴진다면 후회하지 않도록 실패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쪽으로 노력하게 될 것”(서울신문 2015년 2월 24일) 이란 말을 한다. 생각이 변할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 나는 좋을 때는 삼가고 나쁠 때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주역’의 점서적 성격을 뛰어넘는 ‘도(道)’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