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I

形影神(형영신)- 陶淵明(도연명)

코알라 아빠 2020. 11. 17. 18:50

形影神(형영신)은 田園詩人(전원시인) 陶淵明(도연명)의 시 三首幷序(삼수병서) 중 1편이다.

形影神(형영신)은 몸, 그림자, 정신을 상징한다.

 

貴賤賢愚, 莫不營營以惜生, 斯甚惑焉. 故極陳形影之苦, 言神辨自然以釋之. 好事君子, 共取其心焉.

(귀천현우, 막불영영이석생, 사심혹언. 고극진형영지고, 언신변자연이석지, 호사군자, 공취기심언.)

 

서  문                                                 

 

귀하고 천하고 현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막론하고 온 힘을 기울여 자신만 살려고 애를 쓰는데,

이는 매우 미혹된 것이다. 그러므로 몸과 그림자의 괴로움을 상세하고 빠짐없이 분별하여 그 미혹을

풀어낸 것이다. 이 일을 좋아하는 군자들은 함께 그 마음을 취해야 한다.

 

哲理的(철리적)인 관점에서 쓰인 形影詩(형영시) 3수는 시인의 나이 49세 때 쓴 작품이다. 시인이 처한 시대는

佛敎神學(불교신학)이 널리 유행했었던 때이며, 당시 名僧(명승)인 慧遠(혜원)이 廬山(여산)의 東林寺(동림사)에

主持(주지)로 있을 때 《形盡神不滅論(형진신불멸론)》, 《萬佛影銘(만불영명)》을 저술하여 淨土宗(정토종)의

敎義(교의)를 선양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본시에서 도연명은 자신의 관점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東晋(동진)

말년에는 佛敎(불교), 道敎(도교), 玄學(현학) 사상이 범람하였다. 정토종은 ‘神不滅論(신불멸론)’을 선양하였고,

불도를 믿으면 輪回를 거쳐 來生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도교의 일대 계파인 五斗米道(오두미도)

煉丹術(연단술)로 신선이 되어 永生할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렸다. 현학은 무위자연관으로 인해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사상으로 인식되어가고 있었으므로 高官 및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였다. 또 名敎(명교)로 인한

악영향이라고 한다면, 지식인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추구하는 경향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이 시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겨냥하고 있으며, 당시 성행하고 있던 미신적 요소들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또 기타 정상적인 생명을 방해하는 잘못된 관점도 함께 비평하고 있다.

 

 

形贈影(형증영): 몸이 그림자에게 주다 1首(수)

 

위인최영지, 독부불여자

適見在世中, 奄去靡歸期.

 

적견재세중, 엄거미귀기

奚覺無一人, 親識豈相思.

해각무일인, 친식기상사

但餘平生物, 擧目情悽洏.

단여평생물, 거목정처이

我無騰化術, 必爾不復疑.

 

아무등화술, 필이불부의

顧君取吾言, 得酒莫苟辭.

고군취오언, 득주막구사

하늘과 땅은 영원히 존재하고

자연산천도 언제나 변함이 없다.

초목은 자연의 이치에 의해서

서리와 이슬을 맞으며 성하고 시든다.

사람이 가장 영특하고 지혜롭다고 하지만

초목의 영고성쇠처럼 홀로 탈바꿈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방금 전에 보았다면

어느 한 순간 세상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 누가 한 사람이 없어졌다는 걸 깨달을 것이며

친척이나 지인들인들 어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남겨진 물건들을

눈을 뜨고 바라보면 애처로움에 눈물이 난다.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도술이 내겐 없으니

필시 그렇게 되리란 법을 의심치 않는다.

원컨대 그대는 내 말을 잘 듣고서

술이 생기면 마음대로 사양하지 말게나.

 

〔작품 감상〕

 

이 시는 形(형), 즉 육신이 그림자인 影(영)에 대해 말하고 있는 형식이다. 하늘과 땅, 산천은 영원히 존재하고,

초목은 서리를 만나 시들어도 봄비를 만나면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만물의 靈長(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

 세상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초목보다도 못한 自生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필연적인 유한

성의 이치를 따라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정처 없는 나그네 인생이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죽음을 자신의 일이 아닌 타인의 일로 착각한다. 일단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죽음과 동시에 세인들의

마음에서 점차 잊혀져가지만 단지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남겨진 물건을 보며 그에 대한 서글픔을 느낄 뿐이다.

나의 형체인 육신은 하늘로 오를 수도 없고 그림자 또한 나의 마지막 귀착점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는 술법도 지닌 게 없으니 이 모두가 자신과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다.

언젠가는 모두 떠나야하는 짧은 삶이라고 한다면, 서로 통쾌하게 술을 마시며 흉금을 털어놓고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고 환락을 즐기며 인생의 근심을 풀어보자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影答形(영답형):그림자가 몸에 대답하다 2首(수)

   

 

 

〔작품 감상〕

 

이 시는 그림자가 형체에게 대답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신선의 道는 결국 구할 수 없는 不通의 길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자와 형체를 줄곧 지금까지

괴로움과 기쁨을 함께 해 온 合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불꽃처럼 사라지는 것이기에

생전에 三不朽(삼불후), 즉 덕을 세우고(立德), 공을 세우고(立功), 후세에 남길만한 좋은 말을 남기는 것

(立言) 등의 행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儒家(유가) 학자들이 주장한 관점이기도 하다.

 

神釋(신석) 三首: 정신을 풀이하다 3수

   

 

〔작품 감상〕

 

천지의 조화는 본래 사심이 없고 편애함이 없으며, 만물은 모두 나름대로 일정한 규율을 가지고 있다.

우주는 무궁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유한성으로 대변되는 生死의 문제는 고금에 걸쳐 오랜 시간

사람들이 고민해온 話頭(화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佛家(불가)에서 말하는 無常을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지만 도연명은 현실과 속세를 해탈하여 초연하게 살고자 했다.

≪涅槃經≫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건대,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돌아간다. 수명을 오래도록 누린다 해도

때가 되면 소진되게 마련이다. 무릇 왕성한 것은 반드시 쇠함이 있고, 만남은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젊음은 오래 머물  없고, 왕성한 기운도 병들게 되니, 일체 중생의 괴로움은 돌고 돌아 쉼이 없도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며, 모두가 즐거운 것은 없다.”

一切諸世間(일체제세간), 生者皆歸死(생자개귀사). 壽命雖無量(수명수무량), 要之當有盡(요지당유진).

夫盛必有衰(부성필유쇠), 合會有別離(합회유별리), 壯年不久停(장년불구정), 盛色病所侵(성색병소침)

衆苦輪無際, 流轉無休息. 三界皆無常, 諸有無有樂.)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해야한다는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 예술적인 면에서 形影神(형영신) 3수는 寓言(우언)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三者사이에 서로 회답하는 형태로 논술을 전개한 것은 기발한 착상이면서 이 시의

특징을 대변하고 있다. 풍부한 哲理性을 바탕으로 시의 구성이 생동감 있게 이루어져 意趣가 넘쳐난다.

사람이 天地人 三才(삼재) 의 지위에 속해 있듯이 정신 또한 形影神 중 하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긍정하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천연적으로 구비된 것이므로 육신이 서로 의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슬플 때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늘 함께 하는 합일의 존재이다. 이 시에서는 이 모두가 각자 개성을 지닌

독자적인 형상으로 부각시키기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