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로 읽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코알라 아빠 2018. 11. 20. 17:39

흔히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정치제도의 개념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제도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디 사회주의는 경제제도의 개념으로 쓰기 시작한 용어다. 특별히 정치제도와 관련지을 때는 ‘사회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해방 이후 좌우대립,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socialism, 社會主義)는 본디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정치사상의 하나로 출발했다. 즉, 빈곤이 제거되고 시장경제를 거부하며 상호협동과 이타적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사상이다. 여러 학자들이 이론적·실천적으로 이러한 사회를 구상했지만, 마르크스(Marx)와 엥겔스(Engels)의 유물사관과 변증법을 통해 이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용어다.

  

사실, 아직까지도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해 보편적으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사회주의가 사적자본의 존속과 양립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를 없애지 않고도 자본주의적 비인간성과 부정의 폐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사회주의란, 생산적인 기업이 사회적으로 소유되고 경영되며, 생산의 목표가 이윤이 아닌 사용에 있는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는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이러한 투쟁은 기존의 의회주의 형태에서는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들의 생각이다.


결국 사회주의론자들은 자본주의가 수정 가능한가, 아니면 전복돼야 하는가에 따라 입장이 갈라진다. 전자는 ‘사회민주주의’가 대표하고, 후자는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대표된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담당세력은 노동계급이라고 보았는데, 사회민주주의자는 중간계급이 중요하며, 자본가도 사회주의적 이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복지국가의 이념 속에 흡수되기도 하고, 저개발국가에서 급속한 발전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원용되기도 하는데, 복지제도가 잘 이뤄지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집권당이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그 예가 된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본디 공산주의(communism, 共産主義)는 인간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사색을 하면서 싹튼 것이라 할 수 있다. 멀리 플라톤의 「국가론」, T.모어의 「유토피아」, 근세 초 T.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 등에 이러한 사상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산주의라고 할 때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킨다. 이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유럽에서 K.마르크스와 F.엥겔스에 의해 창시된 마르크스주의를, 레닌이 20세기 초 볼셰비키혁명을 거치며 발전시킨 사상 및 이론 체계와 실천운동으로서 공산당(共産黨)이 수립한 과거 소련·동유럽·중국 대륙·북한·인도차이나반도 등지의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에 나타난 원시 공동체사회·고대 노예사회·중세 봉건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 등 여러 사회제도의 출현과 붕괴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란 사회발전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즉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유발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에 의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파괴되며, 마침내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하는 공산주의사회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資本論)에 따르면,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돼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고 그 대가를 임금으로 받아서 생활하는데, 노동자는 약자의 입장에 있으므로 자기의 노동력을 재생산(再生産)하는 데 필요한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한다. 이 지불받지 못하는 잉여노동시간에 창조한 가치, 즉 잉여가치는 당연히 노동자에게 돌아와야 하는데도 자본가의 수중으로 들어가 이윤이 된다. 이윤은 곧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결과라고 한다.


여기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이해의 근본적인 대립으로 계급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수적으로 점점 늘어나고 계급의식으로 단결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을 일으켜 부르주아지의 정치권력을 타도하고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수립, 그 힘으로 부르주아지가 사유했던 생산수단을 사회 전체의 공유로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앞서 봤듯,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시대마다 나라마다, 학자마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나 의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간략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혁명의 주체. 엘리트계급 또는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내려놓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주의라 하며,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를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 보는 입장을 공산주의라 한다. 즉, 누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한다.

둘째, 수단과 목적의 관계. 이에 따르면 궁극적인 목표인 공산주의 사회는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독재하는 사회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갑자기 노동자 중심의 사회로 급격히 변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과도기적 단계로서 노동자가 아닌, 국가와 정부를 대리하는 소수의 정치엘리트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가 필요한데, 이를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이다. 이 구분 방법은 공산주의를 궁극의 목표로, 과도기 단계를 사회주의로 설정해 두 체제를 구분한다.


셋째, 내포의 관계. 사회주의를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란 넓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공산주의는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에 의한 계획경제라는 측면에서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에 포함된다는 개념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구분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주의가 조금 더 온건한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것이라면, 공산주의는 보다 급진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회 혁명을 꿈꾼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일반적으로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며, 공통적으로 정부의 개입에 의해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추진되는 사회라는 유사점이 있다.


공산주의는 이상일 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두 개념은 현재 북한의 정치제도나 경제제도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위에서 설명한 두 용어의 개념을 현재 북한의 정치, 경제에 대입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칭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실현한 국가도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잘 알고 있듯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소련이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급기야 연방을 해체했으며, 이어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몰락했다. 게다가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급속히 자본주의 경제제도가 실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른바 공산주의가 꿈꾸었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실현은 도저히 도래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는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