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세계

주세페 베르디 "레퀴엠 (Messa da Requiem)

코알라 아빠 2017. 11. 20. 12:58


주세페 베르디(1813~1901)

주세페 베르디(1813~1901)

실패한 계획

1868년 11월 13일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가 조아키노 로시니가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는 로시니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이 협력하여 레퀴엠을 작곡하자고 제안하였다. 베르디는 리코르디와 함께 로시니의 음악적 고향 볼로냐의 시의회의 아카데미아 필하모니아에 협력을 요청하였다. 곧 위원회가 꾸려졌으며, 당시 이탈리아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작곡가 13명이 선정되었다. 베르디는 전체 〈레퀴엠〉 중 ‘저를 구원하소서(Libera me)’를 담당하였다. 

로시니 서거 1주기로 계획되었던 초연은 안타깝게도 무산되었다. 위원회의 멤버였던 안젤로 마리아니의 의견에 따라 성 페트로니오 대성당에서의 연주에 대한 반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11월 4일 베르디는 이 계획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13명 작곡가들의 작품은 연주되지 못하였고 베르디가 담당한 ‘저를 구원하소서’ 역시 베르디가 다시 찾기까지 책장에 잠들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1785~1873)
이탈리아의 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1785~1873)

만초니 레퀴엠

1873년 5월 22일 베르디는 이탈리아 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온건하면서도 애국정신이 뛰어났던 만초니를 베르디는 오래전부터 존경하였다. 클라라 마페이를 통해 만초니를 소개받은 베르디는 만초니에게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조국의 진정한 영예를 구현하는 인물로서 존경하는 바입니다”라고 사진 뒤에 써서 보낸 적이 있다. 글귀 그 이상으로 존경했던 만초니의 죽음은 베르디에게 큰 충격이었다. 베르디는 만초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홀로 만초니의 무덤을 방문하여 조의를 표했다. 그리고 베르디는 만초니 서거 1주기에 그를 위한 미사곡을 헌정하려고 하는 마음을 리코르디에게 내비친다. 그렇게 베르디는 ‘저를 구원하소서’를 다시 꺼내들게 된다. 만초니를 위한 레퀴엠은 로시니 때와 달리 베르디 혼자 레퀴엠의 전체를 작곡하였다. 밀라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작곡은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성 마르코 성당에서 밀라노 시장 줄리오 벨린차이의 사회로 만초니 서거 1주기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베르디의 지휘 아래 그의 〈레퀴엠〉이 고인의 영전에 바쳐졌다. 독창은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 테너 주제페 카포니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맡았다. 이 날의 연주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고 사흘 후에는 스칼라 극장에서 재공연이 진행될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만초니 레퀴엠〉으로 기억되며 불려졌다.

베르디 오페라 〈레퀴엠〉 초판 악보 타이틀 페이지, 1874년
베르디 오페라 〈레퀴엠〉 초판 악보 타이틀 페이지, 1874년

종교 옷을 입은 오페라

〈레퀴엠〉은 베르디의 종교음악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다. 작품은 베르디의 원숙기의 작곡기법이 유감없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종교적인 주제를 가진 작품치고는 너무나 오페라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군둘라 크루체(Gundula Kreuzer)는 많은 비평이 종교적인 가사와 베르디의 음악 세팅간의 분열을 인식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확실히 작품은 정력적인 리듬, 숭고한 선율과 가사가 전달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극적 대조로 가득하다. 음악은 가톨릭 전통 라틴어 가사를 가진 레퀴엠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지나칠 정도의 장대한 규모와 화려함, 강렬하고 풍부한 노래로 극적 성격이 강하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한스 폰 뷜로우가 작품의 성격을 빗대어 말한 “종교 옷을 입은 오페라(Oper im Kirchengewande)”일 것이다.

〈레퀴엠〉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1874년
〈레퀴엠〉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 1874년

극적인 요소는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유명한 ‘진노의 날’은 전곡의 중간과 마지막에 반복하고 있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 곡인 ‘저를 구원하소서’는 그 다음에 ‘진노의 날’을 다시 넣어 신의 구원을 청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의 두려움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2곡 ‘진노의 날’의 한 파트인 ‘눈물의 날’은 베르디가 〈돈 카를로〉 파리 리허설에서 버렸던 부분을 재활용하였다. 즉, 오페라를 구상했던 요소가 〈레퀴엠〉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더욱 오페라적인 요소는 성격으로 부릴 수 있는 독창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저를 구원하소서’의 소프라노이다. 소프라노는 합창과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소프라노는 심판의 날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구원을 청한다.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긴 휴지 후 ‘진노의 날’이 울린다. 마치 비극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극 요소 안에도 풍부한 대위의 사용 등으로 오페라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스케치), 1874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스케치), 1874년

제1곡. 레퀴엠과 키리에(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자비를 베푸소서)(Requiem et Kyrie) - 합창, 4중창

제2곡. 진노의 날[Dies irae, 부속가(Sequentia)]

(1) 진노의 날(Dies irae) - 합창

(2) 이상한 나팔 소리(Tuba mirum) – 합창, 베이스

(3) 기록한 문서는(Liber scriptus) – 메조소프라노, 합창

(4) 불쌍한 나(Quid sum miser)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5) 전능하신 대왕이여(Rex tremendae) – 합창, 4중창

(6) 헤아려 주소서(Recordare)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7) 슬퍼하나이다(Ingemisco) - 테너

(8) 저주받은 자(Confutatis) – 베이스, 합창

(9) 눈물의 날(Lacrymosa) – 4중창, 합창

제 3곡. 봉헌송(Offertory) - 4중창

(1) 주 예수 그리스도여(Domine Jesu Christe)

(2) 주께 바칩니다(Hostias)

제 4곡. 거룩하시다(Sanctus) - 합창

제 5곡. 천주의 어린양(Agnus Dei)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합창

제 6곡. 영원한 빛(Lux aeterna) – 메조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제 7곡. 나를 구원하소서(Libera me) – 소프라노, 합창

(1) 나를 구원하소서(Libera me)

(2) 진노의 날(Dies irae)

(3) 영원한 죽음(Requiem aeternam)

(4) 저를 구원하소서(Libera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