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세계

중앙일보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84> 세계 지휘자 7

코알라 아빠 2017. 10. 22. 13:33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84> 세계 지휘자 7


‘지휘봉 끝에서는 단 한 음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음악 관련 기고가인 볼프강 슈라이어가『지휘의 거장들』에 쓴 구절이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총연출가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지휘자를 파악하려면 무대 뒤에서의 성격·태도·음악관·세계관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세계 음악계에서는 수많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빚어내고 있다. 이 중 ‘파워 지휘자’라 할 만한 일곱 명의 스타일과 인생을 소개한다.

김호정 기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고 있다. 1987년 이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한 래틀은 “난 베를린필을
              지휘하기에 한참 모자라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단원 투표 끝에 2002년 상임 지휘자로 임용됐다.


사이먼 래틀  자연스러운 진보

 

●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 1955년 영국 리버풀 태생
● 타악기 연주자로 시작해 콧대 높은 베를린필을 2002년 맡았다. 래틀은 129년 전통의 오케스트라를 최신형 악단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이든부터 브람스까지 18·19세기 음악에도 주력하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은 20세기 이후, 즉 스트라빈스키·쇼스타코비치 등 작곡가를 청중 앞으로 끌어낸 것이다.

영국의 지휘자가 독일의 자존심이 걸린 오케스트라로 오게 된 배경에도 근·현대 음악이 있다. 영국 버밍엄 오케스트라를 1980년부터 20여 년 맡아 이끌었던 래틀은 산업도시 버밍엄을 음악의 첨단도시로 키워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작곡가의 작품을 발굴해 냈고, 청중에게 작곡가는 베토벤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2002년 베를린필 취임 연주에서도 그는 1971년생 작곡가 토마스 아데의 작품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내에 베를린의 청소년을 위한 현대음악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기존 관행을 거스르는 래틀의 진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군림하지 않는 태도 덕분이다.

마리스 얀손스  동·서유럽을 묶다

 

●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 1943년 라트비아 리가 태생
● 청중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RCO)와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동시에 지휘하고 있다. 지휘자 파워 면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톱이다.

그는 라트비아 태생으로 소련에서 음악을 배웠다. 60~70년대 소련 지휘자들의 눈부신 음악적 전통이 얀손스에게 스며 있다. 전설적 지휘자 므라빈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을 이끌던 시절이었다. 70년대 이후 그는 서유럽 진출을 노렸지만 소비에트 정부의 반대로 좌절됐다. 소련으로 돌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일했다.

기회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작됐다. 79년부터 20여 년 동안 오슬로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로 일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선 굵고 따뜻한 러시아 전통에 특유의 정교한 하모니 감각으로 세련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빚어냈다.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고 세계 음악계가 오슬로 필하모닉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런던 필하모닉과 피츠버그 심포니 등에서 얀손스 모시기 경쟁이 일어났다.

얀손스는 2003년 뮌헨, 그 이듬해에 암스테르담의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다. 지난해 RCO와 함께 내한했던 얀손스는 ‘세계 최고’라는 말의 뜻을 풀이해 냈다. 내년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추진력과 쇼맨십

 

●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
● 1953년 러시아 모스크바 태생
● 지휘만 하지 않아 바쁜 지휘자. 러시아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음악 대부다. 올 6월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심사위원진, 진행방식 등을 물갈이했다. 이처럼 게르기예프의 가장 큰 무기는 추진력이다. 88년 오페라·발레 등을 주종목으로 하는 마린스키 극장을 맡아 침체기를 부흥기로 바꿔냈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축제를 이끌면서 이 도시를 전 세계 음악인과 청중이 동경하는 곳으로 일궜다. 세계 도시 곳곳에 뻗어 있는 네트워크와 연주자를 보는 안목 등으로 축제의 수준을 일류로 가꿔놨기 때문이다.

주특기는 러시아 음악이다. 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는 물론 카발렙스키·하차투리안 등 자국의 작곡가를 발굴하는 데도 열심이다. 런던부터 빈·뉴욕·밀라노 등 많은 메이저 무대가 그를 초청한다. 누구보다 선율을 잘 그려내는 연주 스타일과 이목을 끄는 쇼맨십까지 갖춘 덕이다. 내년엔 특히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2월 런던 심포니, 11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을 예고하고 있다.

리카르도 샤이  오페라서 교향악으로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 1953년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
● 이탈리아 지휘자의 전통을 잇고 있는 거장이다. 이탈리아인답게 샤이의 출발은 오페라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맡았던 이탈리아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강력한 후원이 있었다. 밀라노·로마·볼로냐 등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며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잘츠부르크·런던·뉴욕 등에도 차례로 진출하며 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렸다.

가장 큰 인상을 남긴 때는 88년이다. 세계 오케스트라의 선두에 있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35세의 샤이를 수석 지휘자로 지명했다. 1888년 오케스트라가 창단한 이후 첫 외국인 지휘자였다. 샤이는 16년 동안 이 교향악단에 머물며 탄탄한 앙상블을 다듬어냈다. 지금도 무너지지 않은 이 오케스트라의 아성은 상당부분 샤이에게 빚을 지고 있다.

샤이는 암스테르담에 이어 라이프치히를 정복했다. 바흐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 바그너의 고향이다. 대중 공연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효시로 알려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8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샤이와 처음 만났다. 2005년 샤이는 이 오케스트라를 맡아 이끌게 됐다. 2010년까지였던 임기는 2015년까지로 연장됐다.

파보 예르비  풍부한 감수성, 그래미상

 

● 파리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예술감독
● 1962년 에스토니아 탈린 태생
● 활력과 젊음으로 오케스트라의 판도를 바꾸는 지휘자다. 2010년 파리 오케스트라를 맡기 직전까지 신시내티 심포니를 이끌었다. 당시 단원들과 거리낌없이 소통하고 무대의 눈높이를 낮춰 화제가 됐다. 공연이 끝나면 지휘자의 방을 개방해 누구나 찾아올 수 있게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예민한 귀가 더해졌다. 예르비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음악의 굴곡을 짚어내는 지휘자로 유명하다. 카라얀·솔티 등 전설적인 지휘자들이 거쳐 갔던 파리 오케스트라가 제7대 음악감독으로 예르비를 선택한 이유다. 예르비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다. ‘합창의 나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에서도 톡톡히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에스토니아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 이들을 지휘한 음반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달 2,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다.

프란츠 벨저-뫼스트  장엄함을 벗다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 1960년 오스트리아 린츠 태생

●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벨저-뫼스트는 브루크너를 선택했다. 흔히 종교적이고 무겁다 생각하는 브루크너는 그를 거쳐 현대적이고 말끔한 음악으로 변신했다. 투명하고 명료했지만 사운드는 전혀 결점이 없었다. 이처럼 ‘실용적인’ 해석은 벨저-뫼스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불과 서른 살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았다. 그가 런던에 머물렀던 6년은 음악계에서 ‘불협화음’의 시절로 공공연히 통한다. 젊은 나이로 단원들을 이끄는 데 한계를 경험한 후 그는 스위스 취리히 오페라로 자리를 옮겼다.

99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다시 그를 선택했을 때도 ‘젊음’이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벨저-뫼스트는 넓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투명하고 정교한 앙상블을 완성해 나갔다. 이 신선한 ‘클리블랜드 사운드’는 미국 오케스트라의 중심을 동부에서 중서부로 옮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구스타보 두다멜  본능에 충실한 격정

 

●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1981년 베네수엘라 바르키시메토 태생
● 2009년 뉴욕과 LA 필하모닉이 각각 새 지휘자를 맞이했다. 지휘자 앨런 길버트(44)는 14세 아래의 두다멜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9월 길버트가 뉴욕에서 취임 연주를 열고 한 달 후 두다멜이 LA에서 취임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은 같은 곡을 선택했다. 말러 교향곡 1번이었다. 결과는 두다멜의 판정승이었다.

두다멜은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감각에 의존한 채 음악을 풀어나간다. 베네수엘라에서 ‘복지’ 차원으로 1970년대에 시작됐던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의 첫 번째 스타가 두다멜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던 베를린필의 지휘자 래틀, 아바도 등의 눈에 띈 후 세계 무대로 뽑혀 나왔다. 말러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과 시험 무대를 가진 후 LA 필하모닉 전체를 이끄는 자리까지 올라왔다. 2015년까지였던 임기는 올해 초에 4년 연장됐다.

두다멜의 파워풀한 연주 스타일은 이러한 성공 스토리의 표상이다. 또한 클래식 음악계의 미래다. 미국은 두다멜을 LA에 영입한 후 베네수엘라의 음악 교육 시스템 또한 수입했다. ‘누구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본능이 있다’는 점을 일깨운 이 청년의 행보에 음악계가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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