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음악

돌아오라, 유혹하는 ‘시레나의 땅’으로...

코알라 아빠 2022. 6. 5. 14:14

나폴리에서 해안선을 따라 소렌토로 향하는 길에는 가파른 절벽이 바다에 내리 꽂히는 듯한 극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소렌토 거리에 들어서면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는 품위 있는 호텔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어서 이곳이 고품격 휴양지 도시임을 직감할 수 있다.

소렌토는 나폴리와는 달리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다. 하지만 다른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에 비하면 경치 외에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의 땅을 밟는 외국 여행자들 상당수는 이곳을 한번 찾고 싶어 한다. 왜냐면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짧은 노래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올해 탄생 120주년을 맞는다.

소렌토의 바다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다음과 같은 가사로 애창되고 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멀리 떠나간 벗이여,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나름대로 매우 정감이 가는 가사다. 하지만 원곡 나폴리어 가사와 비교하면 내용과 맛이 좀 다르다. 특히 원곡의 2절에 가사에는 ‘시레나’가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알면 노래의 맛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다.

시레나(Sirena)는 그리스어식 표기 세이렌(Seiren)의 라틴어 및 이탈리아어식 표기이다. 전설에 의하면 시레나는 노래를 불러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는데 이 전설의 고향이 바로 나폴리와 소렌토 앞 바다이다. 한편, 시레나의 영어식표기는 사이렌(Siren). 그러니까 경찰이나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소렌토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고급스런 휴양지로 각광 받은 곳으로, 지금도 고대 로마 시대에 세운 고위층의 별장 유적을 군데군데 엿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시레나의 땅’이라는 뜻으로 ‘수렌툼’(Surrentum)이라고 했다.

이것은 나중에 나폴리 방언으로 Surriento가 되는데 현지 발음은 ‘수리엔토’보다는 ‘수리엔트’에 가깝다. 이탈리아 표준어로는 ‘소렌토’(Sorrento)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인 ‘소렌토(Sorento)’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지명 Sorrento와 스펠링이 다르고 이탈리아 사람들 보기에는 매우 ‘짝퉁’스러운 이름이다.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탄생한 트라몬타노 호텔

소렌토에는 1812년에 해안 절벽 위에 세운 ‘임페리얼 호텔 트라몬타노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서는 멀리 펼쳐지는 나폴리 만(灣)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괴테, 바이런, 스코트, 셸리, 키츠, 입센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묵으면서 이 절경에 매료되었다.

1800년대 후반의 일이다. 호텔 주인 트라몬타노는 호텔 내부 장식을 할 사람과 아이들을 가르칠 가정교사를 구하고 있었는데, 1891년에 두 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모두 맡게 될 나폴리 청년을 구했다. 그의 이름은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 소렌토에서 일자리를 얻은 그는 종종 호텔 발코니에 앉아서 시적인 영감을 얻었고 감상적이고 감미로운 가사들을 더러 썼다. 그의 동생 에르네스토는 음악가였다. 두 형제는 기질이 달랐지만 작사와 작곡을 할 때만큼은 마음이 일치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트라몬타노 호텔 객실

1900년대 초의 일이다. 이탈리아 남부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농사에 막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1902년 9월 15일, 당시 이탈리아의 총리 자나르델리는 재해 현장을 순방하러 내려가는 길에 소렌토에 들러 트라몬타노 호텔에 묵게 되었다. 당시 소렌토 시장을 역임하던 호텔주인 트라몬타노는 총리에게 소렌토에 우체국을 세워줄 것을 청원했다. 총리는 마지못해 그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트라몬타노는 데 쿠르티스 형제에게 의뢰하여 총리가 우체국을 세워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잊지 못하도록 즉시 노래를 하나 만들도록 부탁했다. 이리하여 두 형제는 소렌토의 바다가 펼쳐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발코니에서 앉아서 불과 몇 시간 안에 <Torna a Surriento>, 즉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작곡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기존에 써놓은 노래를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작사자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 흉상.

이 노래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년 후의 일이다. 나폴리에서 가요제를 기획하던 출판업자 비데리는 이 노래의 선율이 지닌 엄청난 잠재적 가치를 파악하고 잠바티스타에게 가사를 좀 바꾸라고 제의했다. 이 노래가 가요제에 첫선을 보였을 때, 관중들은 시레나의 노래에 홀린 듯 모두 완전히 넋을 잃었다. 단순한 '우체국신축 청원가'에서 세계적인 명곡으로 탈바꿈하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때는 소렌토에 우체국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그 후 이 노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유혹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동생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는 세계적인 명곡인 <날 잊지 말아라(Non ti scordar di me)>의 작곡가이기도 하다.